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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5월 6일(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5월 6일(월)

후앙리 2024. 5. 6. 05:53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

 

+ 말씀 설명

본문은 종말에 성도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도는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 성도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방탕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방탕한 사람들이 많은가? 술집에는 많은 사람이 술을 마신다. 늦은 밤 시간에 길거리에는 술취한 많은 사람들이 헤매고 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니다.
종말은 덫과 같이 온다. 덫은 모르는 중에, 모르는 곳에 놓여 있다. 그곳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말에 심판을 받을수 밖에 없다.

종말에는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먹을 것을 절제하고, 하고 싶은 것을 절제해야 한다. 과소비를 절제해야 한다. 과취미 생활을 절제해야 한다. 시간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절제하지 않으면 과한 욕심이 지배한다. 절제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다. 그러기에 몸과 영혼이 종말을 맞기 위해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어떤 부분에서 절제해야 하는가?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이며, 종말을 맞아야 하는 성도로서 어떻게 절제하겠는가?

 

+ 선교적 실천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 절제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마지막 때에 기도를 통해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게 하소서.

2. 스리랑카 출신의 타밀인 61명이 인도양 섬에 갇혀 있는데 이들에 대한 정신적 치료와 지원책이 하루속히 마련되고, 무엇보다 디에고가르시아 섬의 국제법적 지위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어 제3국으로 망명 절차가 조속히 시행되도록

 

+ 성경 본문(21)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 절제: SYIS(전인적 대인관계 기술 혁신 워크숍) 참가 후기10

이번 SYIS 워크숍에서 진정한 퍼실리테이터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절제라는 것을 배웠다. 절제가 있어야 가면을 쓴 퍼실리테이터가 아니라 행동이 따라주는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SYIS 프로그램을 인도하면서 절제하지 않음으로 실수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절제하지 않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 사람이 절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1) 지금까지 가진 습관 때문이다. 습관을 고치려면 절제해야 하는데,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절제하지 못한다.

2) 해야 하는 행동 이전에 성격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하기에 절제할 여유가 없다.

3)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욕심이 절제를 갖지 못하게 한다. 욕심이 절제를 이기기 때문이다. 이런 욕심이 삶을 변화시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4)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채워야 하는 성격 때문이다. 한편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꼭 하고야 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데, 어린 아이처럼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 절제를 못하는 것이다.

5) 순간의 말실수가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실수를 하는 사람은 한번만 말실수를 하지 않는다. 말실수가 적은 사람과는 반대로 말실수가 많은 사람은 그것이 습관화 되어 있기에 그 습관을 절제하지 못한다.

6) 화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숫자를 셋까지 세라는 말이 있다. 당장 나오는 화를 셋을 셀 동안 가라앉히라는 것이다. 그런데 셋을 셀 여유조차 없는 사람은 절제가 안 되는 것이다.

7) 침묵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침묵이 말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의 힘이 크지만 침묵의 힘은 때로 더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침묵보다는 말하기를 원하기에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주에 줌으로 하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강의를 마치고 마지막에 강사가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하였다. 한 참가자가 질문하였다. 그는 질문하기 전에 이런 말을 하였다. “제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강의는 좋았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말을 참 예쁘지 않게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똑같은 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강의가 참 좋았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지만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강사가 이 말을 듣는 순간 강의를 잘 못 했나, 혹은 참가자들에게 맞지 않는 강의를 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참가자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은 말을 예쁘게 해야 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참가자가 말을 순화시켜 하고자 하는 절제가 있었다면, 강사가 들어서 기분 나

이처럼 우리는 안 하느니 못하는 말을 절제하지 못해,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말을 절제하며, 듣는 사람에게 덕이 되고 기분 좋은 말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그래서 말을 참 조심해야 한다. 말에 대한 글이 있어 몇 가지 인용해 본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로 해를 받을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예상치 못한 결과를 자져올 수도 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처럼 한 번 뱉은 말은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어디서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없더라도 어디서나 말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한 말도 반드시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보태도 떡은 뗀다는 속담도 있다. 떡은 사람을 거치면서 줄어들지만 말은 사람을 거치면서 보태어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이다.

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해의 골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침묵의 힘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유창하게 잘하는 말보다 굳게 다문 입이 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의 예수님은 갖는 모욕과 조롱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므로 침묵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를 이용하여 나의 말을 줄이고 남의 말을 경청함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말을 조심하고 침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절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제해야 한다. 특별히 말을 절제해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일지라도 너무 과한 것에는 절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어야 한다. 주님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달라고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참고 산다.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사람도 고통을 참으며, 혹은 절제하며 살아간다. 나 자신만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삶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 중에 참는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참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래서 참는다는 의미는 고통을 참는다는 뜻이다. 고통 중에 참을 수 있는 사람이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다. 고통 중에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다. 화를 참을 때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을 때(절제할 때) 참된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잘 참기 위해서 삶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마라톤은 운동 중에서 육체적 절제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한다. 마라톤에서 참을 수 있는 것은 목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목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한 아름다운 모습의 한 형태가 퍼실리테이터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바른 퍼실리테이가 되기 위해 참아야 한다. 참 퍼실리테이터는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이다.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 퍼실리테이터다. 퍼실리테이터는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이 일치가 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참 퍼실리테이터가 되기 위해 참아야 하고 절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