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5월 9일(목)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5월 9일(목)

후앙리 2024. 5. 9. 05:38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2)

 

+ 말씀 설명

아주 의미 있는 역사적인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 사이에 엉뚱한 것으로 다툼이 일어났다.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 자기가 큰 사람인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세상의 권세자(임금)들은 자신의 지위와 권세로, 즉 높은 자리, 큰 사람이 되어 힘을 발휘하여 좋은 사람인 것처럼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너희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셨다. 즉 세상에서 권세로 높임을 받고자 하는 것과는 반대로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도 섬기는 자로 이 땅에 오셨기에 진정한 큰 자가 되신 것을 말씀하신다.

스스로 큰 자가 되거나, 큰 자가 되어 권세를 발휘하는 것이 큰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진정으로 큰 자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섬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으로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 공동체가 더 많은 부분에서 세상을 섬겨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실행할 수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마음 깊은 곳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겸손히 예수님을 따라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모잠비크 기독교 마을의 신자들이 테러와 공격으로 불안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소망과 평안을 경험하고, 가족을 잃은 아픔 가운데서도 무슬림들과 비기독교인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 성경 본문(22)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 양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좁은 골목길에서 다른 차와 마주치는 때가 있다. 반대편에 오는 차들과 서로 양보하면, 즉 좀 더 넓은 곳에서 미리 기다리거나, 천천히 운전하면서 양보를 할 때에는 별 무리 없이 지나갈 수가 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가겠다고 마구잡이로 돌진해 온다. 그럴 경우에는 결국 더 혼란스럽게 되고 서로 빠져나가기가 힘들게 된다.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소요된다.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양보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자기 이익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마주하는 차량과 잘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양보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가려고 돌진하여 가면 결국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할 뿐 아니라 빠져나가는 것이 몇 배가 더 힘들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양보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양보하면 내가 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내가 좀 양보하고, 내가 좀 손해 보면 나중에는 결국 내가 더 큰 이익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상대 혹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누군가 싸움을 걸어오면 내가 좀 손해인 것 같아도 참고 사과하거나, 양보하거나 손해 보면 나중에 그 이익은 나 자신에게 온다는 것이다. 싸우고자 하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말자는 태도를 보이면 당장은 내가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가 승자는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부당한 일로 싸움을 걸어오면, 같이 맞상대하여 싸우면 모두가 더 큰 손해가 있다. 물론 부당함을 지적하기는 해야 하지만, 막무가내인 사람이나 말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는 순간은 기분도 나쁘고 손해도 보는 것 같지만 참아야 한다. 똑같이 이기려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게 더 큰 이익이 있다.

어떤 변호사가 소송에서 이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소송을 안 하는 것, 혹은 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소송해서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손해 보고 소송까지 가지 않는 것이 소송해서 이기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소송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바로잡아야 할 때, 혹은 엄청난 불의가 판을 칠 때는 희생을 해 가면서라도 소송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웬만한 일에서는 양보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유익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십자가는 손해 보고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양보해서 손해 보고, 희생하는 것이 결국 부활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십자가 없이, 즉 희생이나 양보 없이는 부활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좀 더 양보해야 한다. 그것은 먼저는 나를 위해서이며, 그리고 상대와 이 사회를 위해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그런 사람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