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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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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7월 22일(월) 본문
1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사 63장)
+ 말씀 설명
이사야는 에돔과 에돔의 수도(보스라)에서 나오는 이에 대해 말씀한다. 그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 큰 능력으로 걸으신다. 즉 에돔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다는 표현이다. 그분은 공의로 애돔을 치실 것이며, 구원의 능력을 이스라엘에 베푸실 것이다.
애돔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이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애돔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오늘날 성도는 구원을 행하시는 분,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현재의 어려움 가운데 회복과 구원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확신하는가?
+ 선교적 실천
죄악 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 오늘의 기도
1. 오늘도 구원과 심판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인정하며, 주님이 승리하게 하심을 경험하게 하소서.
2. 유럽 사회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문화 리더십들이 견실하게 세워지고, 이들이 이민 사회의 특성과 문제점들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고 참여하는 교회로 이끌어 가도록
+ 성경 본문(사 63장)
1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2)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
한 청년이 직장에서 제대로 대우를 해 주지 않아서 이직하겠다고 한다. 자기보다 능력이 적은 자가 팀장으로 새롭게 온 것에 대한 불만이다. 자기가 일도 잘하고 회사에 더 오래 있었고 성과도 많이 냈는데, 새로 온 팀장은 경험도 능력도 없다. 자기를 승진시켜 주지 않고 그런 사람을 새로 뽑은 것에 대한 불만이 커서 직장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 청년의 말은 옳지만 생각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즉 억울함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억울함은 언젠가는 해소될텐데 그 청년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세상의 일은 잘못된 것이라면 바로 잡혀질 것이다. 이회사도 마찬자기다. 만약 바로 잡혀지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가 존재하는 한 어그러진 것은 바로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 청년은 당장의 억울함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나도 전에 일할 때,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는지 모른다. 물론 내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정리되는 것을 보면서 그때 받았던 억울함은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니었다. 그때 억울하다고 해서 당장은 변화가 없었지만, 먼 훗날 그때를 돌아보면 후에 정리되었고 억울함도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경험을 하였다. 다만 문제는 그때 당시에는 억울함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잘못한 것은 그 억울한 감정 때문에 그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억울함이 해소될 것을 믿고 좀 참았으면 좋았을텐데, 억울하다고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안절부절못하며,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좀 더 참았을 것 같다. 하나님은 어그러진 것을 바로 잡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너무 괴로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안정적으로 만족하며 일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세상의 불의를 보면서 우리는 충분히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억울함이 빨리 풀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악인이 심판을 받고 선인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의 응답은 너무 느리다. 하나님의 임재는 너무 더디다. 답답할 정도로 하나님은 참고 계시는 것 같다.
이스라엘도 그랬을 것 같다. 에돔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괴롭힐 때, 택한 백성은 버리시고 이방인은 사랑하시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에돔을 심판하셨다. 이스라엘이 보기에는 많이 더딘 것 같았을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에돔을 치셨다.
이것이 우리가 불합리하고 불의한 이 세상에서 기억해야 할 사항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공의로우시다. 그의 백성을 결국은 승리하게 하신다. 죄인을 벌하신다. 그 하나님을 좀 더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신앙인의 태도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