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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7월 23일(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7월 23일(화)

후앙리 2024. 7. 23. 05:04

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63)

 

+ 말씀 설명

하나님은 이스라엘 집에 큰 은총을 베푸셨다(7,8). 그런데 이스라엘은 성령을 거역하였다. 큰 은총에도 불구하고 구속해주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향해 이사야는 또다시 그들을 구속하시겠다고 말씀한다. 반복되는 거역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구원해주시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참아주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아버지도 그렇게 하거늘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를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시며, 기다리시겠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끝까지 용서해주신다.

 

+ 묵상과 적용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로 인해 마음에 위로와 소망을 가진 적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하나님이 베푸신 아버지로서의 사랑에 감사하기 위해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하는 일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하소서.

2. 스위스와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들이 지금 이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와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빈곤과 건강, 교육과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도록

 

+ 성경 본문(63)

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13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4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

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19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 부모(아버지, 어머니)

인간의 아버지 됨의 근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임감인가? 어떤 이득을 위한 것인가? 자식을 통해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함인가? 그런 것들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자녀들을 키워보니 부모의 책임도 아니고 자녀의 바른 행실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식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아버지는 자식을 외면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식이 뭔가 잘해서 자식을 사랑함도 아니다. 바로 관계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그 관계는 한 몸과 같다. 끊을 수 없는 관계다. 인간이 자신의 몸과 생각과 삶과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몸과 같은 관계이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어찌보면 제대로 택한 백성다운 삶을 한번도 살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거역하였다. 항상 다른데 눈이 팔렸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한편에서는 우상을 섬겼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환란을 주시기도 하시고 벌을 주시기도 하셨다. 그러나 결국은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시고 또다시 용서하셨다. 그리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셨다.

혹시 우리에게 자녀가 있는가? 그 자녀의 행동과 지위 때문에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참된 부모라면, 자식이기에, 이유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식이 가난해도, 때로 잘못해도 자식이기에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때로 그 자식이 잘못함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지라도 그 아픔을 마음에 품고 조용히 마음에서 소화하며 부모 스스로 이겨낸다. 자식에게 얼마나 참았으며,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다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냥 자식이기에 그렇다. 내 몸과 같기 때문이다. 나와 하나이기에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반복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끝에서는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이스라엘을 위해 쉬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그 이스라엘을 위해 스스로 구속 제물이 되시겠다고 한다. 그 이스라엘을 위해 참으시겠다고 하신다. 그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아버지로서 사랑하신다. 아버지로서 우리를 자식으로 여기신다. 그리고 우리를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