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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15일(토)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15일(토)

후앙리 2025. 3. 15. 05:25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10)

 

+ 말씀 설명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다. 남자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예수님도 세례 요한처럼 공경에 빠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세례 요한은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를 아내로 취한 것으로 헤롯 왕을 비판하다가 죽은 사건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의견을 묻는다. 모세는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성경에 근거해서 성경을 해석하여 대답을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리라고 한 것은 버리라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완악함에 초점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완악한 자들이 근거 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에 아내가 억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혼 증서를 써주라고 명령했다고 설명하신다. 그리고 아내를 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질문을 하였다. 오늘날도 다른 사람을 해하기 위해 질문하고 공격하고 논쟁하는 것은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이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기보다는 되짚는 질문을 하면서 그 배경과 핵심을 잘 설명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다른 사람을 책잡고 공격하기 위한 질문을 사용하지는 않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주변의 부수적인 것보다는 핵심적인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2. AI 기술 발전에 따른 부정적인 면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AI 기술이 위기 예측과 대응에 잘 활용되어 재해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도록

 

+ 성경 본문(10)

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 초점을 흐리지 말자.

부부생활 세미나에서 들은 부부싸움이 원칙이 생각난다. 부부가 싸움을 할 때는 문제가 되는 그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기게 되면 싸움은 커지고 해결책은 점점 멀어진다. 문제가 되는 사건만을 말한다는 의미는 그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슷하거나 동일한 종류의 사건일지라도 그전에 했던 것은 부부싸움을 하는 순간은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사건과 상관없는 일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건강한 부부싸움의 원칙이었다.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가지고 와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말하고 다룬다. 심지어 사건과 아무 상관 없는 원가족(시댁이나, 처가댁)의 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원가족의 문제까지 들고나오면 싸움의 해결은 모호해진다.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다. 그래서 부부가 싸울 때는 문제가 되는 그 사건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싸움도 동일하다. 한 사건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만을 해야 한다. 그 사건에 대해 오해가 있을 때에는 해명하던지 아니면 잘못했으면 인정하면 더이상 싸울 일이 없다. 그런데 일단 잘못을 지적받으면, 그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엉뚱하게 상대의 다른 잘못을 끌고 들어온다. “지난번에 너도 그러지 않았느냐?”라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희석시키려고 한다. 이런 대화를 하기에 서로가 오해가 더 쌓이고, 감정의 골은 더 커져만 간다. 결국 관계가 깨지거나 원수가 된다.

우리는 어떤 문제의 사건이 있을 때, 그것만을 다루어야 한다. 다른 것을 다룬다면 그것을 일컬어 본질을 흐린다.”라고 말한다.

어떤 말을 할 때도 그 말의 핵심이 있다. 설명을 하기 위해 핵심이 아닌 비본절적인 부분을 부연해서 다루기도 한다. 그런데 그 비본질적인 것이 핵심인 양 이해할 때도 있다. 이것을 오해라고 한다. 오해는 핵심을 파악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의 개념이 그렇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안식일의 핵심은 사람에 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안식하는 것이 안식일의 초점이다. 사람이 죽을 것 같으면 일을 해서라고 그 죽을 사람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오해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에 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사람이 핵심이 아니라 일을 핵심으로 만들어버렸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서 이혼하라고 하는 것의 초점은 억울하게 이혼당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완악한 사람들이 이혼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혼을 해도 된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공격하던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라고 했기에 이혼은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완악함을 인해 이혼 증서가 필요하다고 했지, 이혼을 정당화하는 말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핵심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초점을 흐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핵심이 아닌 것이나 사건의 주된 논쟁점이 아닌 다른 사건까지 불러들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는 것이다.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드러내는 것이다. 꽉 막힌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초점을 흐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질적인 부분을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흐트러트리려는 것은 악한 것이다. 악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잘못된 것이다.

성경을 인용할 때도 자기에게 유익한 것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성경 구절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아닌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을 잘못 해석하거나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데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순간 손해가 있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본질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연습도 필요하다.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점을 흐리는 교활한 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