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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14일(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14일(월)

후앙리 2025. 4. 14. 05:04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15)

 

+ 말씀 설명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빌라도에게 끌려오신 예수님은 재판을 받게 되셨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한다. 예수님은 이에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다. 빌라도는 침묵하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하셔서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미 결정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응하며 자신이 꼭 하셔야 할 말과 행동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시고 그 길을 조용히 걸어가신 것이다. 고난 주간에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처럼 가야 하는 희생을 길을 묵묵히 우리도 걸어가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묵묵히 참고 갔던 경험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예수님 처럼 고난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예수님처럼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2.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하고,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분쟁과 갈등이 아닌 평화와 관용을 조성해 가는 데 앞장서도록

 

+ 성경 본문(15)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 침묵

침묵의 장점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 대신에 쉬지 않고 말을 한다. 그것도 생각하지 않는 말, 즉흥적인 말, 감정에서 나오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말 잘하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며,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생각 속에 있어서 일 것이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돌아보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실언을 했는지를 돌아보지 않는다. 만약 말에 대한 자아 성찰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기의 말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침묵이 때로는 말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 말보다 더 좋은 침묵의 장점을 정리해본다.

1. 엎드러진 물의 상황에서는 침묵이 말보다 더 낫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고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을 다시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잘못을 낫는다. 어린아이가 유리 그릇을 깼다면 왜 잔을 깼느냐, 조심하라 했지같은 말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그럴 때는 이미 깨진 것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그 부분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좋다. 침묵하면서 그 순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잘못을 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 아이는 얼마나 놀랐겠는가? 유리그릇이 깨진 것도 아깝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후회도 할 것이고, 일단 깨진 유리 때문에 무섭고, 마지막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야단을 맞을 일이 더 큰 걱정이다. 이런 아이의 상황을 알고 침묵해주는 것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다 안정이 되었을 때 교육 차원에서 함께 대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고의 순간에 원인을 찾는다든지 야단을 치는 것은 모두에게 더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2. 말을 해 보았자 변하지 않은 것에는 침묵하는 것이 더 좋다. 예를 들어 상대가 들어주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 다시 한번 말하는, 즉 간청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말해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그럴 때는 침묵하는 것이 좋다. 성경에는 미련한 자에게 훈계하지 말라고 하였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르칠 필요가 없다. 수십년 동안 부부로 살아오면서 셀 수 없이 똑같은 잔소리를 하는 아내가 있다면, 그 잔소리에 변하지 않는 남편보다는 아내가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미 고칠 거였으면 고쳤을 것이다. 수백 번, 천 번을 말해도 안 들으면 포기해야 한다. 잔소리를 그만 해야 한다. 잔소리를 듣고 안 고치는 남편보다 또 말하는 아내가 더 문제가 큰 것이다. 바뀌지 않을 일과 사람에게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오히려 침묵하고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

 

3. 섣부른 위로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장례식에 가면 할 말을 잃는다. 유족에게 한국 문화에서는 해 줄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없다. 영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는 “I am sorry”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문화권에서는 유족에게 하는 위로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말이 없다. 그래서 조문을 하면서 모두가 어색하다. 유족이나 조문객이나 모두가 적당히 할 말이 없어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어쩌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더 좋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아무 말을 안 하더라도 그저 인사하고 손을 잡아주는 정도면 최고의 위로가 된다. 즉 이런 순간에는 침묵이 말보다 더 좋다.

 

4. 자신이 해야 하는 말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는 침묵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을 하면 실수일까? 맞는 말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확신이 없어 실수하기보다는 말을 안 해서 야단(?)을 맞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물어볼 때 침묵하셨다. 말을 한들, 십자가를 지지 않을 것이 아니기에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으셨다.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좋은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침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하다. 세상은 말 잘하는 법을 중요시 여기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침묵의 법을 더 중요시 여겨야 한다.

침묵할 때 죄지을 가능성이 더 적고, 침묵할 때 더 많은 생각과 묵상을 할 수 있다. 침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사람들과 말을 하면서는 기도하기가 어렵다. 침묵할 때, 힘과 에너지와 시간을 세이브 할 수 있다.

침묵이 금이다. 말이 금이 아니고 침묵이 금이다. 말 못 한다고 자존심 상할 필요 없다. 말을 잘못함으로 침묵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주님! 침묵이라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