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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22일(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22일(화)

후앙리 2025. 4. 22. 05:31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16)

 

+ 말씀 설명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 즉 마리아의 증언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 후에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또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는 다른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역시 제자들도 부활을 믿지 아니하였다.

이들이 믿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너무나 선명하였고 큰 충격이어서 일 것이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만 믿으려는 성향이 있는 인간으로서는 한편으로는 당연하지만, 그러나 부활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다. 그 어떤 사실보다도 확실한 사실이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을 본 자들의 증언을 믿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부활을 보지 않은 자들의 불신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부활의 증인들의 말을 믿고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부활의 예수님을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하게 믿는가?

나의 어려움도 회복될 것을 확실하게 믿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부활을 좀 더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 확신하며 널리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인도네시아 공립학교에 종교 교육을 담당할 기독교 교사들이 빠른 시일 내에 확충되어 아동, 청소년들이 기독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도록

 

+ 성경 본문(16)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신학교에 다닐 때 고난 주간에는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보냈던 기억이 있다. 고난 주간에는 더 경건하게 살며, 즐기거나 노는 일을 절제하였다. 하루에 한끼나 두끼 정도의 금식을 하였다. 몸도 피곤했다. 매일 드리는 학교에서의 고난 주간의 예배는 어두운 분위기였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으니 나도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그런 분위기였다. 마음에는 우울감이 있었고 주님처럼 고난을 자처하지 못한 죄책감도 있었다. 고난 주간만 되면 행사처럼 찾아오는 이런 우중충한 분위기가 주님을 더 가까이 하기보다는 의무적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가끔 빨리 고난 주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기쁨으로 고난에 동참해야 하는데, 마지못해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그런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물론 신학교 시절이 제일 강했고 평생을 살면서 고난 주간의 이런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고난 주간이 되면 목사님의 설교는 고난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목사로서 고난 주간에는 늘 고난에 대한 설교를 한다.

부활주일이 되면 정말 고난(죽음)에서 살아난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뻤다. 부활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지만 한편으로는 고난 주간이 지났다는 해방감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부활 주일은 내게 해방감과 자유함을 가졌다. 마음껏 먹고 웃고 떠들고 놀 수 있는 시간이 되돌아 온 것이다. 평상시대로 살아갈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이것이 부활절이 좋았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올해는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진정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처럼 뭔가 고난을 당하고 절제하고 오락을 금하고 금식하고 우울해지는 것일까? 올해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1. 고난의 동참은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그 묵상이 꼭 금식하고 오락을 즐기지 않고 슬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웃으면서도 주님을 깊이 묵상할 수 있다. 고난 중에도 깊이 묵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사람들과 좋은 만남과 즐기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고난 하는 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도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지만, 고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나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고난에 동참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보다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눠주는 것이 고난의 동참의 의미라는 것이다.

3.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더욱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삶에 실천하는 것이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것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기 위한 것이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주간이 되는 것이 동참의 참 의미일 것이다. 주님의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이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주님의 고난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것이기에 나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 만드는 것임을 알고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는 것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고, 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참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살 때 부활의 참 의미를 누릴 수 있다. 삶의 의미가 바로 주님이 고난 당하신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참 고난 주간의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