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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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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5월 12일(월) 본문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4장)
+ 말씀 설명
아담의 후손에 대한 계보가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아담의 계보중에 눈에 띄는 사람은 에녹이다. 에녹인 아담의 계보의 사람들과 다른 것은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평균 800세를 살았는데 에녹은 365세였다. 엄격하게 말하면 에놋은 죽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살아있을 때 불러 가셨다. 죽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산 날이 365년이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다. 에녹은 엘리야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나님께 간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인데, 그의 대한 기록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구절이다. 히브리서에서도 좀 더 자세히 나왔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하지 못하느니라”(히 11:5-6)라는 말씀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믿음으로 동행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갔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동행의 가치를 묵상하면서 우리도 믿음과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 선교적 실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성공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소서.
2. 프랑스에서 종교적 갈등과 분쟁으로 인한 범죄와 피해가 줄어들고, 프랑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겸손과 관용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유대감을 형성해 나가도록
+ 성경 본문(창 4, 5장)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 나는 동적인 사람이었다.
즉 지금 하고 있는 사역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살아야 하는 사역이다. 즉 정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동적인 사람이기에 공부하는 것에 적합한 성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초등학교 때 만화를 보고 있는 친구에게 만화책 보지 말고 같이 놀자고 했던 기억이 있다. 만화책을 보는 시간에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만큼 타고나면서부터 노는 것에 최적화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축구를 좋아했지만 지금처럼 축구공도 없었고 축구를 할 수 있는 운동화도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 신었던 신발은 까만 고무신이다. 초등학교 때 나의 소원은 공을 차면 공과 함께 날아가는 고무신 대신 끈이 있어 발에서 벗겨지지 않는 운동화를 신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동화를 신고자 한 초등학교 때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할 수 있었지만, 집에 오면 공이 없어 지푸라기를 엮어 공 모양으로 만들어서 축구를 하였다. 동네에는 운동장도 없어서 가을에 벼를 베고 난 논에서 공을 찼다. 지금도 벼를 벤 논을 보면 그때의 축구하면서 가졌던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각난다. 나는 축구만이 아니라 모든 운동을 다 좋아했다. 그저 뛰어다니는 것만이라도 좋았다. 운동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운동이나 놀이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어렸을 때 동적이었던 사람이 지금 하는 사역을 하기 위한 자세인 정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이것은 내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아래의 몇 가지 이유가 나를 동적인 사람에서 정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하였다.
첫 번째는 추운 겨울철이다. 추운 겨울에 시골에서는 밖에 나가 놀 수 없었다. 자연히 방에서 겨울 방학을 보내면서 책을 보았다. 우리 집은 책이 별로 없어서 주로 친구들에게 빌려와서 책을 보았다. 겨울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온돌방에 앉아서 책을 보았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형님들이 보셨던 톨스토이, 헤밍웨이 전집과 펄벅 작품 등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펄벅의 대지를 읽으면서 중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 생각이 나중에 선교사로 헌신하면서 중국 선교사가 되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의 첫 선교지에 대한 꿈은 중국이었다. 처음 선교사로 나갈 때 중국의 문이 선교사에게 열리지 않아 가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책의 영향이 컸었다. 겨울철마다 앉아서 책을 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두 번째 나를 정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쓴 안경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눈이 나빠 안경을 썼다. 그때 당시에 안경은 우리 집 형편에서 구입하기에는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었다. 내가 동적인 사람이어서 안경을 썼던 초창기에는 뛰어놀다가 안경을 깨뜨린 적이 많았다. 안경을 깨뜨릴 때마다 새롭게 안경을 맞춰야 했는데,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경험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뛰어노는 것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뛰어놀고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안경이 깨질까 운동하지 못하고 지켜보던 때가 지금도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안경이 나를 동적인 사람에서 정적인 사람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이다.
세 번째는 목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되는 것이 왜 동적인 사람에서 정적인 사람으로 바뀌게 하는가? 이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좀 더 점잖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사람들 앞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노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또한 뛰어노는 시간보다는 더 많은 책을 보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대학과 신대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만큼 공부의 양이 많았다. 운동하고 놀고 싶어도 책상 앞에 앉아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목사에 대한 시선은 활동적인 모습보다는 아무래도 경건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어서 그것에 합당하게 좀 더 정적인 사람으로 나도 모르게 변해갔다.
네 번째는 자료에 대한 호기심이다. 나는 돈을 버는 것에나 어떤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료를 많이 모으고 정리하고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재미있었다. 교수님들이 하시는 모든 강의는 세밀하게 적었고, 학교에서 참고하라는 모든 자료는 다 모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는 시간보다는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자료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책장에 앉는 습관을 가져오게 하였다.
다섯 번째는 같이 선교사역을 했던 변진석 선교사님의 영향이다. 이분은 나와는 반대로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손에 책을 늘 놓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한마디로 학구파였고 학자였다. 변 선교사님과 같이 휴가를 가는 날이 내 기억에 있다. 나는 그날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휴가를 갔던 곳이 차로 6시간 정도 가는 곳이었다. 휴가를 가면서 나는 책을 보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첫날이 아니고 둘째 날에는 책도 보고 휴식도 하리라는 계획은 하였었다. 그런데 휴가 첫날 밤에 자기 전에 “오늘 책을 한 권 다 보았다”라고 변선교사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같이 6시간을 이동했고 식사 준비도 하고 휴식도 하면서 변 선교사님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실 휴가 첫날이기에 나는 책을 볼 마음의 여유도 시간도 없었는데, 같이 있으면서도 어느새 책을 한 권 보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교지에서 같이 살면서 함께 동적인 활동, 즉 운동이라든지 활동을 하고 싶어도 변선교사님께서 책을 보는 생활을 주로 하였기에 그분의 영향을 받아 나도 같이 책을 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분과 함께 협력 사역을 하다 보니 자연히 그분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고, 그분의 책을 보는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분과 함께 지내면서 책을 보고 공부하는 환경 가운데 자연스럽게 정적인 사람으로 변해 간 것이다. 누구와 함께 교제하고 친구를 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영향을 받고 변해 간다는 말을 나는 경험하였다. 나는 감사하게도 학구파인 변선교사님과 함께 사역을 하면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내가 원래 태어난 성향이 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선교사로서 장점도 될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사역은 정적인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었기에 약점이었다. 그러나 그 약점이 변하여 그에 적합한 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