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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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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18년 7월 14일(토) 본문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눅 22장)
+ 말씀설명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산헤드린 공회로 소환해 재판을 진행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확인하려 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를 적용해 죽이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단지 나사렛 출신의 젊은이로, 유대교 전통을 무너뜨리는 반역자로 여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당당하게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들의 음모를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내셔서 죽음을 자처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분이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라고 기뻐했다.
+ 묵상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질문하는 장로들을 보며 나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질문(말하고 행동하는 것)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죽이기 위해 질문하는가?
+ 적용
사람을 살리는 것, 사람을 도와주는 것, 사람을 섬기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용서하는 것을 위해 행해야 할 일과 행동은 무엇이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 같은 사람을 포함한다)
+ 음모를 아시고 넘어가신 예수님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고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 음모를 아시면서도 음모에 넘어가셨다.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고 음모에 넘어가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정말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내 이익을 위해, 내 이익을 지키기 위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내게 주어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의 손해를 아시면서도 다른 사람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나는 사역자로서 때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밥 먹고 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정말 하나님과 하나님이 명령한 선교를 위해서인가? 내가 사역하는 것, 강의하는 것, 정말 선교가 중요하고 필요해서 하는 것인가? 아니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벌기 위해서인가?
물론 내가 전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언제 그런 생각이 드는가? 내 속에서 욕심을 발견할 때다. 습관적으로 사역(설교 혹은 강의) 할 때다. 내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사라질 때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을 때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할 때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에서 사람을 대할 때다. 사역에 기쁨이 없이 억지로 할 때다. 잿밥(?)에 마음이 쓰일 때다. 이런 모든 상황과 내 마음을 내가 잘 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 먹고 살기 위해 사역하는 내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내가 알기에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이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아시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손해, 즉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음모에 넘어가셨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참 어리석은 행동이다.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기 위해 음모를 아시면서도 넘어가는 그 모습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그 어리석음이 내게는 사역하는 동안에 때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잘남이 나를 감싸고 나의 입장을 변명하고, 그리고 살기 위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사역을 계속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주님처럼 음모를 아시면서 음모에 넘어가는, 어리석어 보이고, 손해보고, 하나님만을 위해 사역을 할 수는 없을까?
+ 본문말씀(눅 22장)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