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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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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영성/영성 자료

+ 감사

후앙리 2021. 9. 16. 05:55

감사는 원망과 상반되는 감정입니다. 두 감정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원망은 삶을 선물로 의식하고 경험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원망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다고 속삭이길 좋아합니다. 언제나 질투의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그러나 감사는 내 것’. ‘네 것을 초월해 삶 전체가 온전히 선물이라는 진리를 내세웁니다. 예전에는 감사라고 하면, ‘선물을 받았음을 의식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반응 정도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더하여, ‘삶으로 실현해내야 할 훈련임을 깨달았습니다. 감사를 훈련한다는 것은, 존재와 소유 전체를 사랑의 선사품이자 기쁨으로 누릴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 훈련에는 의지적인 선택이 포함됩니다. 아직 정서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상처와 원망이 마음을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잘 살펴보면 불평하는 대신 감사의 반응을 보여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겁니다. 비난을 받고 심중에 씁쓸한 아픔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라도 감사를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쉴새 없이 비난할 상대와 추하다고 손가락질할 대상을 찾고 있을지라도 꿋꿋이 선과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복수의 말이 귓가를 맴돌고 증오의 추악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릴지라도, 용서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보는 쪽을 선택할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원망과 감사 사이에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나타나셔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권하십니다. 사랑이 가득한 음성으로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나?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어둠에 남아 처지가 더 나아보이는 이를 가리키며 지난날 아픔을 가져다 주었던 각가지 불행한 사건들을 탓하면서 원망에 사로잡힌 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만 있는 건 아닙니다. 나를 찾아오신 분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내 존재와 소유 전체가 순전히 선물임을 깨닫고 깊이 감사하는 길도 열려 있습니다.

실질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사의 길로 들어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번 바른 길을 고르면 다음 선택은 좀 더 쉽고, 더 자유로우며, 덜 겸연쩍습니다. 한 가지 선물에 눈을 뜰 때마다 다음 선물을 인식하게 되고 또 다음으로 이어져서 마침내 가장 일상적이며, 뻔하며, 평범해 보이는 사건이나 만남들조차도 은혜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기에 이릅니다. “작은 일에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일에도 감사하지 않는다는 에스토니아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불러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하나씩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신뢰와 감사에는 두 쪽 다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필요합니다. 혼란과 원망은 나를 계속 그 영향권 안에 묶어둘 속셈으로 면밀한 계산과 안전한 예측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속적으로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뢰와 감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앙의 도약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이에게 예의바른 편지를 써 보내고, 거부했던 상대에게 전화를 걸며, 똑같이 반응할 줄 모르는 이에게 다독이는 말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도약이란 언제나 사랑받기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며, 돌려 받을 생각 없이 먼저 주고, 초대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초청하며, 마주 붙들어주길 요구하지 않고 잡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미하나마 신앙이 도약할 때면 어김없이 반갑게 달려나와 거룩한 기쁨으로 이끄시는 분이 언뜻 눈에 들어옵니다. 이처럼 신뢰하고 감사하는 훈련은 원망과 불평을 몰아내고 하늘나라 잔치자리에 나를 부르셔서 그 오른편에 앉히고 싶어 속태우는 하나님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헨리 나우엔. 돌아온 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