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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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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교회 건축 본문
1기 사역 때(1995년~1998년)의 이야기이다. 그때 당시에 교회 연합회와 일을 하느라 내가 한 교회의 담임 목회는 하지 못했다. 한 교회의 협동 목사로 담임 목사를 도와 사역을 했었다. 마침 그때가 그 교회에서 교회를 새로 건축하는 시기였다. 교회당이 작아 더 큰 교회당이 필요하였다. 누구에게나 건축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경제적인 형편과 건축비를 비교하면 그들 스스로 건축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 교회의 협동 목사로 그 교회 교인의 일원이었고 그 교회 목회자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분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면서 건축을 하는 것을 함께 도왔다.
나의 생각은 교회 건축은 교인들 스스로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나 외부의 도움으로는 교회 건축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도와주는 것이 당장은 쉽고 유익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축복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중에 그들의 자립과 독립을 생각할 때 선교사가 건축한 교회는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애착심이 부족하게 나타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건축을 도와줄 경우에 잘못하면, 선교사가 돈이 많이 있는 사람으로 오인되기 쉽고 현지인들은 선교사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물질적으로 돕는 선교사도 스스로 교만해질 수 있고 선교사가 돈으로 일하려고 하는 욕심도 생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의 교회 건축에 대한 생각은 현지인 교회는 현지인 스스로 건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교회는 현실적으로 볼 때 교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건축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명으로 교회에 헌금을 하기로 하였다. 헌금함에 넣으면 교인들이 내가 한 줄 알게 되기에 그렇게 하지 않고 목사님을 따로 불러서 드렸다. 목사님께 당부하기는 외부에서 다른 사람이 교회 건축비를 도와주었다고 교인들에게 말하고 건축비로 쓰도록 하였다. 교회 건축을 위해서 온 교인들이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부족하여 낙담되고 힘들고 진전이 없을 때에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건축을 계속해 가도록 이런 방법으로 가끔씩 도움을 주었다. 물론 나도 교회 건축을 도울 만큼 재정이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이곳 한인 교회 목사님이 나를 불러 교회 건축을 위해 헌금을 하였다. 나도 적은 금액이지만 헌금을 하였다. 교인들은 열심히 교회를 건축하려다 너무 힘이 들어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이 누군가를 통해서 도와 주셨다고 믿었다. 이 교회는 자신들의 힘과 땀과 기도로 짓고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나로서는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그들은 선교사로부터 도움을 받아 건축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나도 만족했었다.
교인들의 노력 덕분에 교회 건축은 1년 반 만에 완공이 되었고 헌당식을 하게 되었다. 헌당식에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헌당식이 이들만의 잔치가 될 수 있게 나와 가족들은 뒤에서 조용히 참여하였다. 나는 그 교회 협동 목사였지만 헌당식에서 아무런 순서도 맡지 않았다. 비록 나의 재정적 도움이 없었다면 헌당식은 불가능했겠지만 이 건축은 교인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한 것으로 생각하고 도왔기에 그들의 잔치가 되도록 옆에서 헌당식의 기쁨을 지켜만 보았다. 헌당식의 모든 순서 담당자는 우리 교인들과 주변 교회에서 초청한 목사님들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던 대로 되었다. 나는 물질적으로 도왔지만 그것을 알리지 않았고 헌당식에서도 그저 한 교인으로 참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담임 목사님만은 내가 헌금한 것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헌당식 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가 그동안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교회 건축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빼지 않고 다 부르며 감사의 뜻을 전달하였다. 물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은 다른 교회 교인들과 목사님들께도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그때 나는 마음 한 구석에 ‘그래도 내가 많은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기에 내 이름이라도 부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에 내 이름은 끝까지 불리지 않았다. 그 순간 마음이 서운해지기 시작하였다. 누구보다 많은 헌금을 하고 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교회 건축은 불가능했을 텐데 나를 잊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서운함이 밀려왔다. 감사를 모르는 목사님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운한 감정은 내 마음속에서 화로 변했다. 그래도 최소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는 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이 시간에 목사님이 내게 감사하지 않는 것이 나의 의도였고 나의 선교 철학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교회는 현지인이 현지인 스스로 지어야 한다는 것, 교회 헌당식은 이들의 잔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고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던 원칙과 철학대로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불만족이었다. 나의 공적을 알아주지 않는 것 대해 마음에 서운함과 화가 났던 것이다. 화가 난 감정을 스스로 달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감사 인사 목록에 나를 언급하지 않는 목사님께 가서 따질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어서 헌당식이 끝나자마자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빠져 나왔다. 마음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좋은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위로하였다. “어차피 선교사는 선교사야. 나는 주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야. 그리고 나의 아픔과 서운함은 나 스스로 풀어야지.”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풍족하게 시켜 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서운한 감정으로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보다. 헌당식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었지만 나의 공로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렇게도 서운했던 내 자신, 이것이 연약한 선교사의 마음이었다.
헌당식은 이들의 잔치로 큰 기쁨과 감사로 끝났고, 나는 나를 알아주지 않은 목사님께 서운한 감정을 품은 채,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우리 가족이 안식년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때 전 교인들과 목사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서 송별식을 열어 주었다. 그것도 각 부서별로, 교인 개인적으로, 또한 다른 교회 교인들과도 함께, 여러 번 송별식을 해 주었다. 여러 번의 송별식 중에서 마지막 예배였었다. 내가 송별 설교를 하는데 설교하는 내내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이 앞자리에서 울고 계셨다. 내가 안식년으로 가는 것이 진정으로 서운하고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렇게 혼자서 울고 계셨던 것이다. 어쩌면 선교사로서 나는 그동안 잔소리도 많이 했었고 목사님은 늘 내 눈치를 보아야 했기에 현지인 목사로서는 그렇게 편한 마음이 아니었을 텐데도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고 서운하여 그렇게 우는 것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보면서 헌당식 때의 생각이 났다. 그때는 내가 정말 서운했지만 목사님은 지금 나와 헤어지는 것이 진정으로 슬프고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에콰도르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은 내게 헌당식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은 선교사인 내가 한 건축 헌금을 아무도 모르게 해 달라는 생각을 지켜 주기 위해 일부러 헌당식 때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설명을 하셨다. 나의 선교 원칙을 존중해서 목사님은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해서 감사하는 사람 중에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나를 배려해 준 목사님께 그날 얼마나 서운해 하고 화를 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정말 부끄러운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현지인을 가르치기 위해 선교지에 왔다는 선교사가 현지인 목사의 그 넓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운한 감정만 내세운 내가 너무나 작아 보였다. 그 목사님 덕분에 헌당식은 내가 의도했던 생각대로 현지인들의 잔치가 된 것에 감사해야 했는데 오히려 서운한 생각을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족해 보였다. 한편으로 이렇게 나를 배려해 준 목사님으로 인해 현지인만을 세우고 높여 주며, 나는 낮아지고 평범한 선교사로 남게 되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훌륭한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인 목사님이 훌륭한 목사님이시고 또한 선교사를 훌륭하게 만든 것이다. 정말 훌륭한 현지인 목사님에 의해 내가 바르게 선교하는 선교사가 되도록 인도함을 받은 것이다. 선교사는 주는 자가 아니라 배우는 자임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기회였다. 선교사는 현지인보다 더 많이 가졌고 더 성숙해서 무엇을 나누어 주고 가르쳐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성장해 나가면서 사역하는 존재인 것을 배웠다. (200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