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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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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영성/영성 자료

+ 무력함2

후앙리 2021. 6. 3. 15:01

예수님의 이야기는 성육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끝난다. 그 곳에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손과 발이 못박힌 채 벌거벗은 모습으로 매달리셨다. 말구유에서의 무력함이 십자가에서의 무력함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분을 조롱하고 비웃고,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27:42). 그분은 거기 매달리셨다. 납 조각이 달린 채찍에 갈기갈기 찢긴 몸으로, 친구들의 거부와 적들의 모욕으로 인해 상한 마음으로, 번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정신으로, 버림받음이라는 암흑에 휩싸인 영혼으로- 완전히 연약하고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를 긍휼의 품 안으로 되돌리시기 위해, 그리고 한없는 자비 속에서 분노가 녹아 없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신 하나님의 무력함에 대해서 알 말이 좀 더 있다. 그것은 무력한 탄생이요 무력한 죽음일 뿐 아니라,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무력한 인생이었다.

하나님의 무력한 아이 예수는 무력함 가운데서 복음 받으셨다. 기록되지 않은 나사렛에서의 오랜 생활 후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분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자화상을 제시하신다. 그분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가난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지배 계층이 아니라 소외된 계층이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그분은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셨다. 그분은 항상 작은 자를 돌보신다.

그분은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슬픔을 숨기지 않으신다. 오히려 친구가 죽을 때, 사랑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실 때, 눈물을 흘리신다.

그분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거침없이 불의를 비난하시고 굶주린 자, 죽어가는 자, 나병 환자들을 지키는데 주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비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수를 청하지 않으시고 언제 어디서나 치유하신다.

그분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필요한 일에만 초점을 맞추신채,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신다.

그분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차이를 강조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한 가족 안의 형제자매로서 화해시키신다.

그분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공과 명성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분은 거절과 버림당함이 자신을 괴롭힐 것임을 알고 계신다.

팔복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무력한 하나님의 초상이다. 그것은 또한 병든 자, 죄수, 난민, 고독한 자, 성적 학대의 희생자.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언뜻 보게 되는 자화상이다.

우리는 바로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형제와 자매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우정과 사랑의 유대를 깊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라는 도전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변함없이 기억한다. 진정 하나님의 무력함과 하나님이 친히 한 부분이 되신 인류의 무력함이 사랑의 집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영생의 길,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