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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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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복있는자 본문
팔복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선교사의 삶이 때로는 외롭기도 하고, 물질적으로 힘이 들 때도 있다. 특별히 선교 본부 사역을 하다 보면 스스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사역의 결과는 사람을 훈련하거나 성숙이 아니라 오히려 지치고 상처 난 선교사들을 씨름하는 것뿐일 때가 많이 있다. 그렇다고 본부 사역자라는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명예나 알아주는 것을 바라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 아무도 나를 알아줄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할 때가 가끔씩 있다. 때로는 너무나 지치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어떻게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만을 할 때도 있다. 때로 선교사들이 가끔씩 본부 사역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느냐며 위로와 고마움을 표시할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일을 시키기 위한 하나의 입에 발린 소리겠거니, 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정도 생각이 들 때는 심각한 자신의 증상을 보면서 정말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놓이기도 한다. 날마다 온전한 일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문제 해결을 위한 일에만 매여 있다 보면 정말 우울증이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을 때도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을 위해 다른 상담과로부터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감사한 것은 정말 내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얼마 전 팔복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팔복의 내용이 바로 복 있는 자다. 주님이 “복이 있나니”를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누가 복이 있는가?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자, 온유한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긍휼히 여기는자. 마음이 청결한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자가 복이 있다, 라고 선언하신다. 여덟 번씩이나 “복이 있다” 라고 선포하신다. 애통하는자, 라는 말씀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가난한 자라는 말씀을 보면서 내 신세가 얼마나 처량한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라는 말씀을 보면서 정말 박해 받는 내 자신이 보였다. 이것은 정말 박해였다. 내 자신에 대한 박해였다. 그래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도 원통한지, 왜 그렇게도 외로운지, 왜 그렇게도 고통스러운지, 정말 내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기에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에서 주님은 “복이 있나니”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슬픔의 눈물이 감격의 눈물로 변하는 것이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라는 것이다. 나의 어려운 현실을 아시고 내게 따뜻한 음성으로 “영아 네가 복이 있다” 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복을 찾아 나선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그 복이 바로 내게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복받은 자라는 것이다. 내가 당하는 고통이 바로 복이라는 것이다. 내가 흘리는 눈물 때문에 복되다, 라고 하시는 것이다. 반대로 눈물과 고통과 아픔이 없으면 복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신다. 천국에서 상이 클것이라고. 천국이 저희것이라고. 그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하셨다.
주님의 음성이다. 힘든 중에 위로의 말씀이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다시 나를 일어서게 하고 내 자존감을 갖게 하는 말씀이다. “복이 있나니” 주님이 왜 반복해서 이 단어를 쓰셨을까? 나를 위해 쓰신 것이 아닌가!
“주님이여 그렇습니다. 저는 복된 자입니다. 주님이 주신 상이 기다려집니다. 천국이 저의 소유입니다. 이 세상은 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소망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눈물과 비교만이 저를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복이 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복 되다로 했기에 복된 인생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