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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선교지 음식 본문

선교와 영성/약함의 선교

선교지 음식

후앙리 2020. 6. 26. 19:15

 

1995710, 선교지의 음식을 먹으면서 느꼈던 것을 기록한 일기이다.

<어제 감람산 교회(Iglesis Monte de los Olives:Gusbamba)를 방문하였다. 교회 헌당예배를 드리는 날이어서 교회 연합회(IEAP) 회장과 떼레사 자매 가족과 함께 축하하러 갔다. 헌당식 예배는 3시간이 넘게 진행됐는데 축사와 감사인사, 설교, 특송 등의 순서가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비록 한국 교회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강대상과 의자들이 잘 정돈된 그런 소박한 예배당이다. 그리고 예배에는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있었다.

예배를 드릴 때, 이 나라에 온 지 6개월도 채 안 되는 내 눈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순서를 위해 강대상에 올라간 사람들마다 다른 순서 담당자들과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기보다는 만남의 기쁨을 서로 나누는 자리처럼 보였다. 내 눈에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경외심의 분위기가 좀 부족한 것 같다고 보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드리는 예배가 아직은 내게 익숙지 않아 좀 지루하기도 하였다.

예배가 끝나고 나서 함께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음식을 아직은 편하게 먹기가 힘들다. 선교사는 당연히 감사하며 현지인의 음식을 먹어야 하지만 나는 이곳 음식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먼저 나온 음식은 닭다리와 닭 머리가 들어있는 수프다. 어렵게 다 먹기는 했지만 닭다리는 옆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닭다리를 받아든 옆 사람은 감사하게도 맛이 있어서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음식 먹을 도구가 없으니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것도 내게는 편치 않았다. 음식이 잘 집어지지가 않고 자꾸 손에서 미끄러져 갔다. 수프를 먹고 나서 담았던 그릇을 그대로 회수해간 뒤 그릇을 씻지 않은 채, 누가 먹었는지 모르는 그릇에 튀긴 닭살 몇 개와 감자, 그리고 밥()이 담겨져 나왔다. 메인 음식을 먹는 중에 치차라는 전통 음료(우리나라의 식혜나, 막걸리 같은 음료)가 큰 대야 같은 데 담겨져 나와 단 하나의 컵으로 사람들이 돌려가면서 마셨다. 음식이 입맛에 맞느냐 하는 것보다 위생문제가 내 마음 속에서 계속 꺼림칙하게 남아 있었다. 음식을 편하게 먹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선교사의 자질이 부족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였다. 선교사는 선교지의 음식을 기쁨으로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는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생각하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는데, 나는 선교사로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선교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였다. 물론 하나님께 잘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한편으로 마음에 즐거움으로 먹지 못하는 나 자신을 회개하면서 음식을 먹었는데,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한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첫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성육신하셔서 세상의 음식을 잘 드시고 사신 것처럼 나도 선교사로서 선교지의 음식을 잘 먹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성경말씀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위생관념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세 번째, 베드로가 환상 중에 내려온 율법에 부정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은 부정하지 않다고 하면서 먹도록 지시하셨다(이 구절의 의미는 이방인을 부정하게 보지 말고 이방인에게 다가가라는 말씀의 뜻이지만). 베드로처럼 나도 선교지의 음식을 먹기 힘들다는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면서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는 힘들어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네 번째, 현지인들은 그 음식을 맛있게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기 때문에 선교사인 내게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쁨으로 먹는 이들의 모습이 나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다섯 번째, 아마도 수많은 선배선교사들도 현지음식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생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만 음식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서 현지인의 음식 때문에 죽은 선교사가 선교역사에서 단 한 명도 없었으므로 나도 현지음식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억지로(?)라도 다 먹었다. 그리고 다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아내는 음식을 먹기 전에 헛구역질만은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하는데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가까운 에콰도르 친구가 해준 조언이이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다. “에콰도르 사람들은 자신들이 손님에게 준 음식을 손님이 먹지 않으면 친구관계를 계속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선교사에게 선교지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본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한다. 나는 위장 기능이 약하여 잘못 먹을 때는 소화가 잘 안 된다. 그러나 이런 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길 때, 그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 선교사로 보내셨기에 건강 문제의 근본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쁨으로 선교지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잠자리에 들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