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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쇠함과 흥함 본문

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쇠함과 흥함

후앙리 2020. 12. 15. 10:05

요즈음 국회의원들은 국가를 위한 정책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의 당의 정책이 우선되는 입법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표가 유익한데로 정책을 만든다고 한다(가수 나훈아 씨는 왕이나 대통령들이 백성과 국민을 위해 목숨 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교회의 일을 하는가? 아니면 진정 성도와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지극히 유치하고 부끄러운 질문들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이렇게 폄하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볼 때, 이런 질문, 혹은 비판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다. 한국교회가 이처럼 물질주의 사상으로 가득하게 되고 복음의 본질인 희생과 사랑을 잃어가는 것은 바로 지도자들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질문할 수 있다. 나는 진정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위한 일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일인가? 어쩌면 대부분의 일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내게는 손해 보는 것들이다. 죄로 가득하고 물든 세상에서 나도 이익을 보고 하나님도 이익 보는 것은 많지 않다. 내가 손해 보아야 하나님이 이익을 보거나 하나님이 손해 보아야 내가 이익을 본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군중들이 어느 날 예수님께로 갔다. 군중들에게 자신의 인기가 줄어들었다. 군중들이 예수님께로 간다는 것은 사도 요한에게는 치명적인 실패다. 그의 사역의 실패요, 인생의 실패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면 자기를 따르던 군중이 다 예수님께로 가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쇠해져서 예수님이 흥해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였다.

세례 요한의 경우처럼 이 세상의 원리는 어쩌면 내가 손해 보아야만 예수님께 이익이 돌아간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대부분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산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시게 된다.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나를 위할 것인가? 예수님을 위할 것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았기에 결국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교회의 지도자, 그리고 나 자신도 나를 포기하고 희생하여 예수님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 내가 사는 진정한 길이다. 나만 잘 살고 예수님이 쇠해진다면 결국 나도 망할 것이다. 주님을 위해 사는 자신을 포기하고, 진정으로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