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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신앙의 율법화 본문

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 신앙의 율법화

후앙리 2021. 7. 13. 05:07

요즈음 각 교회마다 유행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다. 코로나 19와 맞물려 잘 맞는 교회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성경 필사. 성경 필사가 많은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에게 유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성경 필사가 신앙생활에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필사의 장점으로는 성경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 함양,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한 기본자세 형성,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마음을 하나님께 진중할 수 있는 방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힘을 얻는 기회, 등등의 유익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경필사가 신앙의 올무, 즉 신앙을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할 위험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위험성은 바로 성경 필사 자체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을 때 일어난다. 물론 대부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필사가 신앙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너무 부각시키다보면 필사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다. 필사의 목적이라면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설교도 듣고, 성경공부도 하고, 필사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사 자체에 너무 큰 의미를 두어 실천하는데 까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신앙에 독이 될 수 있다. , “나는 성경을 소중히 여겨 필사까지 했다는 의식은 있는데 그 필사를 통해 변화된 신앙의 삶이 없다면 성경 필사는 하나의 율법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그런 예들이 있어왔다. 그런 것들이 유행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다. 그 때 당시에는 신앙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율법화된 경향이 있었다.

첫 번째 예는 새벽기도. 새벽기도가 한국 교회의 부흥과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말할 수 없이 좋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새벽기도가 신앙의 척도가 되어버린 부분은 새벽기도의 율법화까지 초래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뒤로 부흥회. 부흥회가 한국교회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부흥회 중심의 신앙은 신앙의 균형을 잡는데 방해했던 요소가 있었다. 한국교회의 무속신앙과 샤머니즘 사상을 받아들이는 통로, 신앙의 세계관을 성공주의로 바꾸어버린 잘못된 신앙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는 양적으로는 부흥하면서 질적으로는 한국교회의 타락의 결과를 가져오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그 뒤로, 제자훈련도 마찬가지다. 제자훈련의 장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러나 제자훈련 자체가 우상이 될 만큼 어떤 교회에서는 지나친 제자 훈련를 강조하였다. 제자훈련은 엘리트 교인을 양성하는 또 다른 부작용과 함께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해서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 뒤로, QT, 가정 예배, 총동원주일, 성경통독, 특별새벽기도(특새)가 지나갔다. 이런 것들도 비슷한 신앙의 율법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은 맞다. 그러나 그것을 율법화한 것은 가장 큰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원 뜻, 즉 그 내용과 의미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것은 말씀을 율법화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율법적인 규칙을 지키는 것은 도움이 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규칙이 말씀의 의미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은 말씀의 율법화가 되는 것이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삶과 태도와 생각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하는 것이다. 말씀은 과거의 죄악의 삶에서 돌이켜 바른 길로 살아가게 하는 데 목적으로 쓰였다. 그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그에 반해 율법화는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기 보다는 그 율법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이다. 즉 방법이 내용 위에 있는 것이 된다. 말씀의 의미와 내용보다 율법적으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율법화라 말할 수 있다.

성경필사도 말씀대로 사는데 목적이 있다. “필사를 했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구약만 하고 누구는 신구약을 다 했다고 한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신구약을 다 필사한 사람이 더 훌륭한 신앙인인가? 아니다. 구약만 필사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한 사람이 더 훌륭한 신앙인이다. 신구약을 필사했지만 그 삶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그 필사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필사를 하고 나서 나의 삶이 무엇이 변했으며, 얼마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었느냐를 질문해야 한다. 만약 그런 질문 없이 성경을 썼다는 것만 강조하게 되면 그것은 성경필사의 율법화이다.

그래서 성경 필사를 율법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 후에 자신이 경험한 것(깨달은 것이나 은혜 받은 것 그리고 행동이 변화된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나누어야 한다. 나누지 않고 필사 했다는 것, 그것 자체로만 칭찬한다면 그것을 율법화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성경필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필사를 하는 시간만큼 교회에서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 성경공부하면서 지식적으로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사항을 나중에 점검해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실천했는지에 대해 나누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 필사도 필사 이후에 반드시 교회 전체적으로나 아니면 소그룹에서 행한 바를 나누어야 한다. 이런 삶의 변화에 대한 나눔이 없다면 성경필사는 율법화 된 것이라고 봐야 하고 이것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서 성경 필사자들에게 시상을 하였다. 어떤 분은 창세기, 어떤 분은 구약, 어떤 분은 신구약 전부를 필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도들은 박수치며, “와우~~” 하면서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그렇게만 끝나면 안 된다. 어쩌면 성경 필사를 하는 시간만큼 이웃을 돕는 일,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성경필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고, 율법화하지 않는 대안이라고 본다.

이것을 지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좋은 것이면 좋게 보아야지 왜 비판만 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율법화는 신앙과 반대가 되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필요하다. 만약 아무런 비판이 없이 무조건 받아들이고, 율법화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신앙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교회의 프로그램들이 율법화 되었기에 지금의 한국교회의 잘못된 모습이 나타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의 상식기준에도 못 미치는 그런 유치하고 수준 낮은 종교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는 이기주의적인 기독교이며, 세상에서 전혀 쓸모없는 기독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예수는 믿지만 교회와 신앙인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근본 요인이 이런 교회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율법화 되어 교인들을 무지하게 만들고, 맹목적인 신앙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할 때, 유행처럼 지나가는 그런 행사들을 할 때, 율법화를 주의해야 한다. 그런 프로그램이든지 간에 그 프로그램은 신앙을 돕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최종 목적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데 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생각과 행동이 바뀌도록 하는데 있다. 그래서 성경필사의 율법화를 나는 염려한다. 한국교회는 이제는 맹목주의적인 신앙과 율법화한 프로그램들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