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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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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 십자가

후앙리 2021. 11. 23. 14:34

하나님의 의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만이 아니다. 죄 사함과 해방도 가져오게 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의를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에서 알 수 있다. , 인간이 죄를 지었기에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죄를 지은 인간을 대신하여 벌을 받으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벌을 받으심과 동시에 죄인인 인간은 용서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의는 죄에서 해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의 의는 바로잡는 것인데, 용서와 죄에서의 해방을 위해 바로잡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에 반해 은혜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거저 주는 선물이다. 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 은혜는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와 은혜는 정반대다. 함께 만날 수 없는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로 일치되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의와 은혜를 하나 되게 하였다. 십자가는 의와 은혜를 동시에 이루었다. 서로 반대이며, 함께 합할 수 없는 의와 은혜를 합하게 한 것이 바로 십자가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죄지은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구원을 받게 한 것이 십자가다. 인간이 받아야 할 벌을 받음으로 인간을 의롭게 한 것이 십자가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다. 인간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받았기에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십자가는 대신 벌을 받아준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이 희생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희생이다. 손해다. 아픔이다. 고통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행동을 보임으로 살아야 한다. 즉 희생하고, 손해보고, 아프고,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도 십자가로 구원받은 인간들이 십자가의 정신으로 살지 않는다.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참으려고 하지 않는다.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첫째가 되려고 하지 꼴찌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기려고 하지 지려고 하지 않는다. 부자가 되려고 하지 가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편하고 안정되게 살려고 하지 불안정하고 거친 인생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싸우려고 하지 화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복수하려고 하지 용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진정으로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정신으로, 행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첫째가 되지 말고 꼴찌가 되라고 하셨다. 높이 오르려고 하지 말고 낮아지라고 하셨다.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 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과 정신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가? 교회 안에 이런 정신이 남아 있는가?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정반대로 살아가는 곳이 아닐진대, 정반대를 가르치고 행하고 있는 모습이 현실인 것 같다.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