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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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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에벳멜렉 본문
에벳벨렉은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고관들에 의해 구덩이에서 죽게 되었을 때 왕에게 직언을 하여 예레미야를 살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에벳멜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해본다.
1. 에벳멜렉은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믿었고 믿음의 행동을 보였다. 에벳멜렉을 통해 볼 때 형통이나 가문이 신앙보다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신앙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 이방인일지라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구약시대에도 이방인에 대한 구원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먼저 선택받은 이스라엘보다 더 신실한 신앙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 모태 신앙은 그런 의미에서 큰 의미는 없다. 어머니가 기도하고 기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신앙을 가질 수 없고 스스로의 신앙고백과 신앙으로 살고자 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아울러 모태신앙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앙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떤 사람보다 더 신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각자 개인의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혈통에 상관없이 신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정 배경으로 각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복음은 누구에게나 선입견 없이 전해져야 한다.
2. 에벳멜렉은 자신의 목숨의 위험 가운데 신앙의 행동을 보였다. 신앙을 가졌다는 의미는 모든 것이 형통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 신앙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신앙을 지키다보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오늘날 신앙인들 중에는 신앙을 갖는다는 의미를 모든 것이 잘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일 뿐이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더 많은 고난과 손해를 보아야 할 수도 있다. 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다면 그것 또한 제대로 된 신앙을 가졌는지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물론 신앙이 형통을 가져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형통을 주지만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타락과 싸워야 하기에 더 많은 부분에서 신앙으로 인해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신앙 때문에 고난이 있는가? 그 신앙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3. 에벳멜렉의 말을 들은 왕은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왕도 예레미야가 부정적인 예언만 하기에 다른 고관들과 함께 예레미야가 싫었고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히 이방인인 내시가 예레미야를 살려주어야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왕은 내시의 말을 따랐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짐작컨대, 평소에 내시인 에벳멜렉은 왕에게 신실한 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왕에게 신뢰를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왕은 그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왕에게 신임을 받지 못했다면, 왕은 오히려 정 반대로 예레미야를 죽게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에벳멜렉의 신앙은 일상의 삶에서 성실함과 충실함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믿음을 가졌다고 단지 믿음의 고백(종교생활)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행동과 삶에서 신실함이 바탕이 되는 그런 신앙이 참된 신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