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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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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15년 3월 4일(수) 본문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수22:19)
묵상과 적용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지파 반이 율법에 명시한 곳인 실로가 아닌 곳에 제단을 쌓는다는 말을 듣고 오해해서 그들과 싸우러 갑니다. 무조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신께 제단 쌓을 만큼 그곳이 범죄한 땅이거든 그냥 그 땅을 놔두고 가나안 땅으로 오라고 권면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오면 우리 땅을 조금씩 나누어 주겠다고 합니다. 제발 제단 쌓는 일은 여호와께 범죄한 일이기에 그것을 중단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두 지파 반을 오해하고 한 말이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오면 자기 땅을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재산을 나눠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희생입니다. 형제를 살리기 위해 먼저 자신들이 희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형제를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가 먼저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불화하거나 싸우는 이유는 희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보겠다고 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그 사람은 그렇게 못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희생의 모습이 아닙니다. 부부간에, 혹 이웃 간에 자기가 먼저 희생하면 상대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웃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못 살게 구는 상사가 있다면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 그를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그 상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사가 한 데로 갚아주거나 혹은 똑같은 모습으로 대한다면 희생이 없는 것입니다. 희생의 없으면 상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를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그 원인이 바로 그 사람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손해보지 않을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전도란 무엇일까요? 복음을 전해주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내가 어떤 불이익이나 손해를 당해야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한다든지, 돈을 써야 한다든지, 억울함을 참는다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손해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도는 손해보는 것입니다. 손해보지 않고 좋은 것만 전해주겠다는 것은 참된 전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전도하시고 싶습니까? 내가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 희생이 무엇이든지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내가 손해를 보겠다는 의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손해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지파 반에게 권면하기를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고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형제(오해였지만)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인지의 기준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계속하며 살지는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