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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6월 17일(수)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0년 6월 17일(수)

후앙리 2020. 6. 16. 23:12

23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장)

+ 말씀설명
모세는 백성들에게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에 경배하지도 말라고 명령한다. 그 때 당시에는 동물과 일월성신 등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는 어떤 형상(우상)도 그들이 섬겨야 할 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어떤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섬기는 것도 우상이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피조물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이다. 

+ 묵상과 적용
-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하나님만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분이 없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지 않게 하소서.
2. 한국교회 가운데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그 우상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3.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국 교회를 통해 선포되고,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 제도들이 마련돼 결혼 기피와 저출산 문제가 점차 해결되게 하소서.
4. 약 40개의 종족과 다양한 언어가 있는 기니의 복음화를 위해 성경 번역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게 하시고 라디오 복음 방송의 송출 시간이 늘어가게 하소서.

+ 성경본문(신 4장)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20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21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은즉
22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을 건너지 못하려니와 너희는 건너가서 그 아름다운 땅을 얻으리니
23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가톨릭 선교사들의 영성
며칠 전에 케이블 TV 가톨릭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기독교 방송을 보려고 채널을 넘기는 도중에 ‘선교사’에 대한 말을 하기에 가톨릭 방송을 보게 되었다. 계속 보니 중남미에 파송된 가톨릭 한국 선교사들의 모임을 찍은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중남미에 파송받아 사역하고 있는 가톨릭 선교사들, 주로 신부와 수녀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이는데 작년 말에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모인 모임을 취재한 내용이었다. 선교사들의 모임의 과정을 세밀하게 다루었고, 또한 중간 중간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와 간증을 넣어서 편집을 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모임을 생각해보았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모임과는 분위기나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모임은 주로 회의를 많이 한다. 모임의 분위기도 좀 자유롭다. 대신에 가톨릭 선교사들의 모임은 삶과 신앙에 대해 많이 나누는 것 같았다. 좀 더 조용하며 엄숙한 분위기도 있었다. 

선교사들이 하는 대화의 내용도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략, 사역, 가정 얘기들을 주로 하는데 비해 이들은 선교사로 살면서 느끼는 것들, 특히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묵상하고 바라는 말들을 많이 하였다. 개신교 선교사들과는 영성의 방향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아무래도 개신교 선교사들은 사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많이 하고 가톨릭 선교사들도 활동과 사역도 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누가 옳고 잘하느냐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은사가 다르기에 다른 삶을 살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역의 현장이 신앙과 분리될 수도 없음도 안다. 그러나 개신교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가톨릭 선교사들의 태도와 관심, 그들의 하나님에 대해 갈급한 마음은 상당히 부러웠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기에는 가정이 있으며, 아무래도 묵상보다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에 더 치중하는 신앙의 스타일 때문에 가톨릭 선교사들보다는 약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톨릭 선교사들의 말 속에는 주로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의 낱말이 들어있고 이 낱말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주로 말하는‘선교’나 ‘사역’보다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자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며 사는 그들의 삶의 자세가 참 좋아 보였다. 가톨릭이라고 교리가 다르고 때로 타종교와 같은 그런 사상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찾는 그런 마음, 열정,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서고자 하는 그런 태도는 본받을만한 것이었다. 그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개신교의 장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성, 즉 침묵하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그런 영성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 한 분만을 생각하며 그분께만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말씀과 묵상과 기도의 삶을 깊이 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