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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8월 11일(화) 본문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장)
+ 말씀설명
참 된 지혜자는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 어리석다고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가 될 때 하나님은 그가 참 믿음의 소유자임을 인정하신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택하셔서 오히려 세상의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 참 된 지혜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자가 되려 하지 말고 어리석은 자가 되려고 해야 한다.
+ 묵상과 적용
-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오늘을 살면서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 세상에서 지혜로워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으며, 또한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가?
+ 오늘의 기도
1.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2. 중국 땅에 심긴 복음의 씨앗이 당국의 핍박과 압제 속에서도 아름답게 꽃피게 하시고, 그 향기로 공산주의를 압도하셔서 닫힌 복음의 문들이 다시 열리게 하소서.
3. 에티오피아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확장세가 증가하고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증오와 폭력을 막으시고 회심자들이 늘어나게 하소서.
+ 성경본문(고전 3장)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가면과 나
오늘 아침 카톡 단톡방을 하는 중에 한 분이 저만 빼고 “세분이 사모님이시네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 목사님의 부인이 자신에게 사모님이라고 하지 말고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직함과 그의 신분이 달라지는데 우리 모임은 교회가 아니기에 언니라고 부르면 더 좋겠다고 말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직책에 대한 ‘가면’을 쓴다. 그 가면은 그 직책을 맡았을 때 잠시 쓰는 직책에 대한 표시다. 가면이라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순간에는 그 가면을 쓰고 그 가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면이 자신의 참 모습은 아니다.
나는 목사인데, 집에서는 아이들의 아빠요, 내 아내에게는 남편이다. 집에서도 목사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색한가? 내가 교회에서 설교할 때나 성도들을 목양할 때는 목사다. 그곳에는 목사라는 가면을 쓰고 그 직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진정한 나는 아니다. 목사라는 직책을 잠시 맡았을 뿐이다.
잠시 쓴 가면의 자신과 실제의 자기를 혼동하면 그 사람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 수 있다. 그러면 사는게 힘들게 된다.
유명한 연예인이나 정치인, 운동선수는 그 자리에 있을 때 유명인이고, 인기가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 인기가 그 사람의 참 모습은 아니다. 다만 그 일을 하고 있을 때 잠시 그 인기있는 일(직책)에 대한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 가면을 벗으면 원래의 자신을 찾아가면 된다.
얼마 전에 갑자기 유명해진 트롯 가수가 있다. 그 가수가 고백하기를 갑자기 인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나서 옛날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얼마 전까지는 저런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인기가 있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옛날의 자기 형편을 잊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 트롯 가수는 지금의 인기가 있는 가수로서의 자신이 ‘참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명해졌다고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인기가 있다고 그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가수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트롯 가수가 옛날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 때의 모습이 오히려 그 가수의 ‘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면이 자신인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그러나 가면은 가면일 뿐이다. 나도 목사로서 교회에서, 혹은 그 역할을 감당할 때 목사이지 집에서는 아빠요, 남편이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는 목사라는 가면을 쓰고 목사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그 가면을 벗으면 안 된다. 설교하고 있는데 내 아이가 같이 놀아달라고 하면 강대상에서 내려와서 아이와 놀아주면 안 된다. 가면을 쓴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나의 ‘참 자신’은 목사가 아니다. 엄격하게 따지면 ‘아빠’도 가면일 수 있다. 내가 길거리에서 걸을 때는 나는 ‘한 사람’ 혹은 ‘한 사회인’이다. 그곳에서 내가 집에서처럼 아빠 행세를 한다든지, 혹은 교회에서처럼 목사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
가면을 ‘참 자신’ 혹은 ‘참 자아’로 착각 할 때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유명인이었다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저 가면을 벗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 자리의 권한과 인기를 누리지 못하게 되면 괴로워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역할(가면)과 ‘참 자신’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참 자신’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내가 ‘참된 나’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나님의 자녀다. 생명을 가진 것만으로 소중한 존재다. 가진 것이나 재능이나 하는 일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 자신을 귀중히 여기신다. 생명을 가진 것만으로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그것만으로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거듭났고 영생을 얻는 존재이다. 아울러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귀하고 소중하고 가치 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나의 능력, 재산, 건강, 잘 생김, 사회에서의 인기, 위치를 보지 않으신다. 심지어 기독교 사역자라면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잘하는 것이나 못하는 것 자체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생명, 그것이 바로 나의 참 자아요, 참 된 나이며 그것으로 나는 중요한 존재다. 그러기에 잠시 갖는 가면이나 역할로 나를 단정하거나 정의를 내려서는 안 된다. 그 가면 때문에 참 자아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 가면을 벗었다고, 그 가면이 구겨졌다고 괴로워할 필요 없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가? 따지고 보면 대부분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가면 때문이다. 가면과 나의 실체를 구분하지 못해서 가면이 구겨지거나, 가면이 제 역할을 잘 하지 못하거나, 가면이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못할 때 힘들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가면(역할과 직책)이 나의 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참 모습은 가면에 상관없이 생명 그 자체로서 가치 있고 소중하며 의미 있고 귀한 존재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 그 어떤 가면 때문에 구겨지지 않는 생명을 우리는 가지고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