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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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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8월 25일(화) 본문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 7장)
+ 말씀설명
바울은 성적 타락이 심한 시대와 지역에서 사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누군가 결혼하기로 약혼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약혼녀는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런 경우라면 상대를 생각해서 결혼하라고 권면한다. 결혼은 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과부도 결혼할 수 있지만 주 안에서 하라고 권면한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신앙이 결혼보다 우선이라는 뜻이다. 결혼 문제로 신앙을 떠나지 말 것이며, 신앙의 관점에서 결혼하라고 한다. 신앙의 관점 중의 하나는 결혼 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기쁘게 하는 삶, 섬기는 삶이 더 복되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모든 결혼에 대한 것을 요약하기를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그것도 좋지만 저 것은 더 좋다, 라고 말하는 것이 지혜임을 배우게 된다.
+ 묵상과 적용
-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주 안에서 누리기 위해서 결단해야 할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 나의 자유가 주어져 어떤 것을 결정할 때 주님을 위한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가?
+ 오늘의 기도
1. 내게 주어진 자유를 주 안에서 사용하고 누릴 수 있도록 온전한 지혜를 주소서.
2. 성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눈물을 기억해 주시고, 사회적 제도와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과 삶을 파괴하는 악한 일이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3. 터키 사백만 이상의 난민이 유입된 가운데 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지게 하시고 난민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사라지게 하소서.
+ 성경본문(고전 7장)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5)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바울의 표현
바울은 결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이런 표현을 쓴다.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고전 7:38). 우리의 일상에서 보는 많은 일들에서 이 표현 방식대로 사용하는 것이 참 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즈음 한국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전라도와 경상도로 확연하게 구분되어 서로 싸우고 있다. 흔히 말하는 당파싸움, 즉 이념 갈등의 양극화가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표현 방식을 사용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좌는 나쁘고 우만 옳다. 혹은 좌는 선이고 우는 악이다, 라는 방식의 표현보다는 좌도 좋지만 우는 더 좋다, 혹은 우의 사상도 좋지만 내게는 좌의 사상이 더 나을 것 같다. 이런 표현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람도 그 누가 완벽한 사람이 있는가? 누군 좋고 누군 나쁘다는 식의 사람을 구분하는 것만큼 잘못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면이 있고 약한 부분이 있다. 그 사람은 이런 면에서는 좋지만 저런 면에서는 더 좋은 것 같애, 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혹은 저 사람의 약점은 이런 거지만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저 사람의 장점은 이런 건데 정말 좋고 아름다운 것이야, 라고 칭찬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표현과 말을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속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가 더 옳고 누가 그른 것을 판결하기 보다는 누구는 참 좋은데 누구는 좀 더 좋더라, 라고 말한다면 이 사회는 양극화로 인해 싸우는 것이 줄어들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내가 가입해 있는 한 단톡방이 있다. 서로 만나 교제하는 좋은 모임이다. 이 모임 참석자들은 정치적, 사상적으로 우와 좌가 분명하게 나눠져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서로의 정치적인 입장을 내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부분에서 서로 얘기하다보면 다투게 되고 관계가 나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예민한 정치적인 문제는 언급을 하지 않으려 하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서로 사상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공통점으로 모인 모임이니 오히려 서로 이런 부분에서 토의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단,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이념을 깍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듣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가능하다. 내 사상만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서로가 다른 사상에 대해 배우려는 태도를 갖는다면 나와 다른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서로 배울 수 있고 서로 이해를 넓힐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반대로 그런 성숙함이 부족하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오리려 긴장하게 된다.
오늘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에, “그것도 참 좋지만 이런 것도 더 좋지 않을까?”라고 표현하면 어떻까? 이런 태도가 성숙하고도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