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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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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10월 14일(목) 본문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렘 36장)
+ 말씀설명
바룩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백성들은 듣고 금식을 선포하였다.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즉각 자신들에게 적용하며 반응한 것이다.
이어 바룩은 유다 왕국의 고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 말씀을 들은 고관들은 즉각 왕에게 이 말씀을 전하겠다고 반응한다. 그리고 혹시 왕이 바룩의 말씀을 전해 듣고 바룩과 예레미야를 죽일 수 있기에 왕을 피해 숨어 있으라고 한다(19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고관들의 반응은 마른 솜에 물을 부을 때 물을 빨아들이는 솜처럼 말씀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그리고 말씀을 왕에게도 전하며, 아울러 말씀을 전한 전달자들의 안위까지 생각하였다.
하나님을 듣고 즉각 반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반응을 볼 수 있다.
+ 묵상과 적용
-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가?
- 오늘도 실천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순종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2. 탄자니아에서 사망한 전임 대통령 마구폴리의 독재의 잔재가 청산되어 민주사회로 잘 정착되며, 탄자니아 교회가 안전하게 성장해 가게 하소서.
+ 성경본문(렘 36장)
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13 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14 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나봇의 억울함
구약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나봇 이야기가 나온다. 나봇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따라 신실하게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때 당시의 왕인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보고 욕심을 내어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궤략에 따라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다. 나봇 입장에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포도원을 아합에게 내어 주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포도원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런 불합리한 일로 죽은 나봇은 참으로 억울한 사람이었다. 신앙을 지키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포도원도 빼앗기는 일이 일어났는데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이 나봇의 억울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1. 하나님께서 나봇의 억울함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첫 번째가 누군가가 억울함을 알아주는 것이다. 알아만 주어도 억울함의 절반은 풀어진다. 하나님은 나봇이 죽을 때까지 그냥 놔두셨지만(미리 손을 대서 살려주었으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더 좋았겠지만) 그러나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까지 버리신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죽음으로 비참하게 끝이 났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그에게 임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그냥 억울하게 살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억울함을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다.
2. 하나님은 억울함을 아실뿐만 아니라 억울함을 풀어주신다.
나봇은 죽었지만 그 이후에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을 벌하셨다. 죽음 이후에라도 억울함을 풀어주셨다는 사실이다. 나봇이 억울함을 스스로 푸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하나님이 풀어주신 것이다. 다만 시간적으로 약간 이후일 뿐이지 하나님은 나봇의 억울함을 완전하게 풀어주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어떤 억울함은 내가 갚을 수도 풀 수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풀어주시면 그 억울함은 완전하게 푸는 것이 된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알고 계실뿐 아니라 풀어주고 계신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아주 잠시 후면 우리의 억울함 고통, 아픔을 하나님은 해결해주신다.
3. 하나님은 이 세상만을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 이후의 세계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 세상의 삶은 잠시 잠간이고 죽음 이후의 삶은 영원하다. 이 세상에서의 잠시의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생애는 이 세상만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무시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잠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영원한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억울함만 보지 말고 저 천국의 영원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곳에서는 완전히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은 눈물을 깨끗이 닦아 주실 것이다. 나봇의 억울함과 죽음을 통해 오히려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된다.
4. 하나님은 나봇을 알고 계셨고, 나중에 아합과 이세벨에게 벌을 내리셔서 그의 원한을 풀어주셨다. 그리고 천국에서의 소망이 진정한 소망인 것을 나봇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런 모든 과정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신다. 고통 중에도 함께 하시고 평안 중에도 함께 하신다. 억울한 중에도 함께 하시고 죽음 중에도 함께 하신다. 그런 면에서 현재 당하는 사건, 일, 고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더 중요하다. 반대로 어떤 일을 성취하고 인생을 성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와 복은 어떤 일이 잘되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것이 바로 가장 큰 위로이며 그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리고 억울한 그 순간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 된 행복이다. 어려운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다.
나봇의 억울함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영원하심과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