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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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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10월 2일(토) 본문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장)
+ 말씀설명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갈 것을 알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땅을 사는 매매 증서를 보관(바룩에게 넘겨줌) 했던 예레미야는 “슬프도다. 주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신 분이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슬프다고 한 것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바벨론의 팔려가는 것에 대해 슬프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기에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슬픈 현실이 있지만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고 간구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묵상과 적용
- 어려운 형편과 환경 중에도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찬양하는가?
- 무엇 때문에 오늘도 실망하고 좌절하는가? 그 분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는 신앙인이 되자.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며 살게 하소서.
2. 마카오에서 민주 진영의 활동 공간이 극도로 축소되는 상황인데, 마카오에서의 민주주의의 가치가 잘 지켜지고, 현지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의 자유가 제한받지 않도록 하소서.
+ 성경본문(렘 32장)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20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이 주일의 말씀
제 13장 참 된 그리스도인의 표지. 고전 4:6-13절
서론
신앙을 가지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 영생을 얻는다. 힘들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일이 잘된다. 건강해진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세상의 복을 누린다.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유익이 있다. 그 유익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되는 것도 신앙의 유익이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도 유익이다.
잘됨과 고난,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유익이 되는가? 때로 고난이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겸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반대로 교만한 사람은 신앙이 낮은 사람이다. 그것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지적한다. 고난이 유익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본론
1.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6절).
바울과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을 보였다. 어떤 본이냐면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본을 보였다.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교만해지지 않는다.
고린도 교인들은 말씀 밖으로 넘어갔고 교만해졌다. 그래서 서로 대적하였다. 파당을 지었다. 4개의 파당을 만들었고 자신들이 따르는 파가 제일 낫다고 생각하였다. 서로 잘 낫다고 경쟁한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의 삶을 살았다. 고난의 삶을 본으로 보이면서 그들이 말씀을 넘어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만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처럼 고난은 말씀 안에서 살게 한다.
2. 고난은 자랑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7절).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것을 은혜가 아닌 자신들이 잘 나서 가진 것처럼 자랑하였다. 즉 하나님께 안 받은 것처럼 그렇게 자랑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을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처럼 자랑하였다.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분수를 모르고 교만하여 자신을 자랑하기에 급급하였다. 그들이 받은 은혜를 잘못 생각하여 이렇게 자랑삼았는데, 만약 그들이 받은 은혜 대신에 고난의 삶을 살았다면 그들은 자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서 잘 된 것, 세상의 것을 자랑하였는데, 고난이 있었다면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기에 그들은 자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난은 자기자랑을 하지 않게 하고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게 한다.
3. 고난은 삶을 깨어있게 하기 때문이다(8절).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 왕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8절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너희는 이미 배부른 자처럼 되었구나. 너희는 벌써 부요한 자들이 되었구나. 우리를 떼어 놓고 너희는 벌써 왕들이 되었구나, 실제로 너희가 이미 왕들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도 너희와 왕노릇함에 동참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뜻이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종말에 얻을 구원의 완성, 하나님의 놀라운 복과 은혜를 이미 다 받은 척 그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구원 받은 것은 맞지만 종말에 완성된 구원을 위해 좀 더 참아야 하고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구원의 ‘첫 맛’을 보았을 뿐이다. 그 때 까지는 죄악과 고난의 이 세상에서 깨어 살아야 한다. 고난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
4.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이다(9-13절).
고난의 삶을 통해 십자가의 못 박힌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바울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맹수들과 또는 서로서로 싸워 죽도록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 줄지어 끄려 가는 투사들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바울이 투사들의 맨 끝에서 끌려갈 때,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천사들까지 구경을 삼을 만큼 그렇게 고난을 받았다. 죽기까지 고난을 당한 것이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10절에의 말씀은 이런 뜻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었고 세상을 자랑을 일삼는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의 지혜자처럼 되었고, 사도들은 약한 사람처럼 되었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에서 강한 자처럼 그렇게 믿음으로 유익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사도들은 고난에 동참함으로 비천한 자처럼 되었지만 세상에서 잘 난 것, 받은 유익을 자랑한 고린도 교인들은 세상 사람이 보기에 존귀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자랑이나 교만이나 자신의 공적이나 힘이나 잘 난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사는 삶인 것을 설명하고 있다.
11절에는 이 시각 까지 그들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살았다고 한다.
12절에는 수고하고 친히 혼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 즉 참았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것이 그들에게는 유익이었고 영광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13절에는 비방을 받았으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을 당하셨으니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처럼 고난에 동참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산 것이다. 이처럼 고난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다. 그러기에 그것이 유익이다.
결론
오늘날 많은 사람은 신앙인이 된다는 의미를 “유익한 것”으로 찾는다. 그러나 바울은 유익이 아니라 고난이 참된 유익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성도들도 세상에 대해 강하고, 잘 살고, 자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게 한다.
고난은 인간의 잘됨을 자랑하지 않게 한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깨어있게 한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이 세상을 구원한 것처럼 고난이 세상을 구원한다. 그런 면에서 잘되고 평안한 만을 구하는 약한 신앙이 아니라 고난을 자처하고 고난을 받아들이고 고난을 즐거워하는 강한 신앙인, 신앙이 깊은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