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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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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5월 23일(목) 본문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눅 24장)
+ 말씀 설명
엠마오로 가던 예수님의 두 제자가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여겼으나 예수님이 죽고 나자 낙심하여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여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해도 믿지 못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직접 나타나셨다. 함께 가고 있는 예수님을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나타나 동행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부활을 기대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셔서 부활하심을 알려주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와 동행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이시다.
+ 묵상과 적용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만나고 있는가?
+ 선교적 실천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삶을 날마다 살게 하시고 부활의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게 하시며,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게 하소서.
2. 기술의 발전과 선교 환경의 변화를 주목하면서 선교단체들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선교사들을 잘 훈련시켜 나가고, 현장 선교사들이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끊임없이 배움의 길을 걷도록
+ 성경 본문(눅 24장)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 예수님은 어디 계시는가?
나는 산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등산을 좋아한다. 산을 오르는 것이 참 좋다. 왜냐하면 내 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육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건강까지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등산이다. 만약 등산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육체적으로 더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거기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귀한 시간을 덤으로 얻으니 등산은 내게 참으로 필요하고 좋은 시간이다.
나는 세 달 전쯤에 수리산을 올랐다. 그전에는 수리산 둘레길과 안양에서 올라가는 길을 주로 택했는데, 그날은 대야미 수리사 쪽에서 오르는 길을 택했다. 물론 나는 등산을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보통 시간을 정해놓고 산에 오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의 여유가 없어 급하게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2시간만 등산하자는 마음을 가졌다. 임도 오거리에 출발하여 바로 슬기봉에 올랐다. 그곳에서 좀 쉬면서 내려오면,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슬기봉에서 돌아 내려오려다 정면을 보니 수리산에서 제일 높은 태을봉이 보였다.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태을봉은 오래 전에 내가 사는 안양 쪽에서 단 한 번 오른 적이 있었다. 슬기봉에서 태을봉을 보니 얼마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태을봉을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서두르면 태을봉까지 갔다 와도 예상했던 2시간을 조금만 넘기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태을봉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런데 바로 앞에 보였던 태을봉에 쉽게 도달하지 못했다. 보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가보니 작은 봉우리 산들이 중간중간에 많이 있었다. 이 봉우리만 넘으면 이제 태을봉에 도착할 것 같은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다. 시간도 예상보다 두 배 더 걸렸다. 걸어가면서 이제는 다른 봉우리가 없겠지, 했는데 그것이 계속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생의 최종 목표를 향해 갈 때, 작은 봉우리들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산 넘어 산이라고 인생은 한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고비들을 넘기면서 인생은 살아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회적이었다. 십자가의 죽음 후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부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하고 끝, 이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계속해서 부활의 모습으로 제자들과, 그리고 현재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부활하신 무덤은 빈무덤이었기에 그곳에 안 계신 것으로 역사적인 부활을 하셨지만, 주님은 그 빈무덤이 없는 그것 자체의 부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찾아가셨던 것이다. 제자들이 있는 곳곳마다 찾아가셔서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성도들의 일상의 모든 삶에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로 갔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각자가 있는 곳에 나타나셨다. 이것처럼 오늘날도 예수님은 성도의 각자의 삶에 나타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때로 부활이라는 큰 산을 바라본다. 부활이라는 큰 산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부활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큰 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봉우리들이 우리 인생 가운데 있는 것처럼, 그 작은 봉우리에서도 부활이라는 역사가 매일매일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큰 산을 향하여 아무 어려움이 없이 도달할 것처럼 보이지만 작은 많은 봉우리 산들이 있는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의 큰 사건은 우리의 작은 일상에서도 부활의 사건으로 나타나시고 임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덤에서 사라져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최고의 신앙이다. 그 부활의 고백이 우리 인생을 바꿔놓았으며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은 이미 승리의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부활의 큰 경험은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도, 즉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봉우리들, 산 넘어 산인 인생에도 구체적으로 임재하고 역사한다는 사실이다. 부활은 지금도 우리가 경험하며 주님의 살아계심은 인생의 산을 넘을 때 함께 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부활 신앙이며, 고난이 거듭되는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우리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