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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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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9월 21일(토) 본문
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 말씀 설명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땅의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임하여 고통을 주는 이적을 행하셨다. 바로의 요술사들이 똑같이 이적을 행하고자 하였는데 하지 못하였다. 바로에게 티끌이 이가 되는 이적은 하나님의 권능만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요술사들의 말을 듣지도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믿지도 아니하였다. 티끌이 이가 되게 하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가르쳐준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도 없다. 무생물에서 생명을 창조할 수도 없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이적과 살아계심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의 모습이다.
+ 묵상과 적용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통해 알고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부분은 없는가?
+ 선교적 실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교회 공동체에 임하기 위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생명을 창조하시는 권능 앞에 겸손히 엎드려, 온전한 순종으로 살게 하소서.
2. 남아공 광부들이 착취당하지 않는 노동 환경이 마련되고, 남아공 교회들의 도움을 통해 법적 다툼에 있는 광부와 미망인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 성경 본문(출 8장)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 제 4차 로잔 인천 대회
9월 22일(주일)- 28일(토)에 인천에서 제 4차 로잔 대회가 열린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처음 개최되어 로잔 대회라고 일컫는다.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선교대회는 WCC이고 로잔 대회는 복음주의 선교대회이다. 2차 대회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고 3차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되었다.
“선교대회”는 선교의 이슈와 전략과 필요를 다루는 모임이다. 선교대회마다 특징이 있다. 선교를 홍보하고 동원하는 선교대회도 있으며, 선교사를 위로하고 케어하는 선교대회도 있다. WCC나 로잔 선교대회는 선교에 대한 이슈나 전략을 논하는 자리이다.
로잔 선교대회의 시작은 자유주의의 WCC가 사회 참여를 선교의 중심으로 보는 것에 대한 복음주의의 해답을 찾기 위해 모인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복음주의는 복음 전도를 선교로 보았다. 반면에 자유주의는 사회 참여, 즉 사회 개혁이나 봉사를 선교의 중심으로 보았다. 당연히 복음 전도에 사회 참여가 함께 가지만 복음주의에서는 사회 참여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로잔 대회는 복음 전도에 대한 중요성이나 핵심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사회 참여도 선교의 중요한 영역으로 보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1차 로잔 대회의 중심에는 성공회의 존 스토트 목사와 빌리 그래함 목사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있었다. 복음 전도를 중요시하면서도 사회 참여에 대해서도 상당한 문을 여는 기회가 되었다. 지난 제 2, 3차를 거치면서 로잔 대회가 사회 참여 쪽으로 너무 치우진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지만, 사실은 사회 참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며, 성경도 이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러기에 사회 참여를 다루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사회 참여를 다루는 것에 대한 용어를 로잔 대회에서는 “총체적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선교는 복음 전도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복음이 총체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인간의 필요를 무시할 수 없고 그것에 대한 반응을 하는 것이 참된 선교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총체적인 선교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게 된다. 단지 복음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 다양한 이슈 속에서 선교는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 답을 찾는 기회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처럼 나도 너를 보내노라”(요 20:21 )의 말씀에 따라 세상으로 가서(보냄을 받아) 예수님처럼 선교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복음 전도, 즉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실천하셨을 뿐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자, 약한 자, 문제 있는 세상을 도우셨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이 세상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총체적으로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복음 전도’냐, ‘사회 참여냐’라는 이원론적인 논쟁보다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떻게 교회가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며 숙고하는 기회가 되는 로잔 대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대회를 위해 3-4년 전부터 한국 로잔 위원회에서 많은 준비를 해왔고 드디어 내일부터 이 대회가 시작된다. 이 대회를 위해 한국 교회가 참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를 위한 더욱 전진하는 기회가 되길 기도한다.
(참고: 제가 다음 한 주 동안 로잔 대회에 참석함으로 인해 QT는 올리지만, “일상의 묵상 글”은 기회가 되면 첨부하고 그렇지 않으면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