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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5일(수)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5일(수)

후앙리 2025. 3. 5. 05:19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7)

 

+ 말씀 설명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간구하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따로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양 귀에 손을 넣고 침을 뱉어 혀에 손을 대시고(아마도 이 사람의 마음의 치유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늘을 우러러 에바다’(열리라)라고 외치셨다.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다.

메시아가 오시면 듣지 못하는 자가 듣게 되고 어눌한 자의 혀가 기뻐 노래한다고 구약에 예언했는데, 실제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다. 복음으로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남을 보여주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복음의 능력으로 몸과 마음이 치유 받은 경험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교회가 영적 어눌함과 귀를 막는 세상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영적인 귀가 막힌 자들의 영혼과 삶이 회복되게 하소서.

2. 100개 넘는 무장단체들이 활동 중인 민주콩고의 치안 불안이 하루속히 해소되고, 여성과 아이들이 더 이상 무고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 성경 본문(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설교 작성에 대한 책을 읽고 선교사님들과 함께 독서 토론을 하였다.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하실까?”라는 책이었다. 성경의 본문 중심의 설교, 논리적인 설교, 청중이 이해하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이었다. 한 선교사님께서 이런 말을 하였다. “설교를 논리 있게 잘한다고 해서 진정 청중들의 삶이 바뀔까?”라는 말이었다. 설교는 듣는 청중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목표이다. 그런데 설교를 잘한다고 해서 성도들의 삶이 변화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말을 듣고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설교를 가르치는 교수나, 설교를 하는 설교자들의 삶은 어떨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들의 삶은 좋은 설교를 하는 동안에 좋은 사람으로 바뀌고 있는가? 아는 것은 많고 설교의 기술은 늘어도 정작 설교를 하는 사람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들은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 그것에 대한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성숙하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 모두 성숙해지는 것이 더 많은 기술과 지식을 쌓는 목표이다.

나는 선교사다. 선교사란 무엇인가? 복음을 많이 전하는 사람인가? 선교 사역을 잘하는 사람인가? 나는 선교 강의를 하러 다니는 강사다. 듣는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지만, 강의를 많이 하다 보니 강의의 기술과 내용이 이 전보다는 더 발전된 것 같다. 내가 강의를 잘한다는 뜻이 아니고 강의의 기술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강의의 실력이 늘어가고 있는 것만큼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나는 40년 동안 설교를 해 왔다. 30년 전 어느 해인가는 일 년 동안 2500번의 설교를 한 경험이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설교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내가 생각할 때 40년 전보다는 설교 기술적인 면에서는 더 능숙해진 것 같다. 이번 달에 나는 설교 작성에 대한 책을 한 권 출판한다. 설교에 대해서는 그래도 많은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런 내게 질문을 해본다. 설교를 했던 지난 40년 동안, 설교가 능숙해지는 기간 동안 진정 나는 무엇이 변했는가? 실력은 늘었는데, 신앙의 인격은 얼마나 발전되었는가?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인가? 설교에서 강조하는 믿음 있는 사람인가? 엄밀히 나를 성찰해보면, 그 반대인 것은 아닌가, 오히려 더 퇴보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설교 잘하는 목사, 사역 잘하는 선교사, 강의 잘하는 강사, 글 잘 쓰는 작가를 추구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좋은 사람보다는 잘하는 사람, 능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날이 갈수록 겸손해 져야 하는데 늘어가는 기술로 인해 더 교만해지지는 않았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사실을 밝히는 일에 더 열중하지는 않았는가? 솔직하게 나를 바라볼 때 좋은 성품보다는 뛰어난 실력을 더 추구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잘났다고 당당하게 살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설교 잘하는 목사, 장의 잘하는 강사, 사역 잘하는 선교사, 글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그저 좋은 사람, 좋은 신앙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온유한 사람, 자상한 사람, 긍휼이 풍성한 사람, 여유 있는 사람, 누구도 다가가기에 부담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