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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18일(금)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18일(금)

후앙리 2025. 4. 18. 05:18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15)

 

+ 말씀 설명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마지막 장면이다. 큰 소리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다. 한 백부장은 그 모습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님의 구속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져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지성소)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에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표현하지만, 그 버리심이 인류를 구원하고 예수님을 부활시킨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어떤 고통을 통해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고 있는가?

 

+ 선교적 실천

하나님 앞에 담대히 가지고 갈 문제는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날마다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며 나아가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하소서.

2. 불안한 상황에 놓인 미국 내 이민자들을 위해 교회와 기독 단체들이 더욱 힘을 모으고, 특별히 힘든 이민 생활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도록

 

+ 성경 본문(15)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복음서를 찾아보았다. 요한복음서에서는 그 순간에 일어난 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두 가지다.

1) 하나는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이고 2) 또 하나는 백부장이 예수님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여기에 마태복음만 세 가지를 더 말하고 있다. 1) 땅이 진동하고 2) 바위가 터지고 3)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세 가지의 핵심은 천지의 요동이 일어난 가장 중요한 것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말하고 있다. 즉 세상의 가장 큰 변동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생명 회복(부활)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날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일로 인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묵상할 수 있다. 묵상하면서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우리가 보통 말하는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휘장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는(구약의 상징적인 장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휘장 안쪽에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대제사장인 예수님이 친히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드리셨을 때 세상(사람)은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휘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기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입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한 것이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이다(2:14).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를 가져왔다.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던 적대감을 허무셨다. 십자가는 민족과 계층을 넘어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화해의 공동체이며,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체이다.

둘째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백부장은 유대인 종교지도자 편에 있는 자였다. 세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백부장의 고백이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모든 종교와 사상과 지역을 초월한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변하지도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진리 중의 진리라는 것이다. 십자가에 죽었을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죽음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지만 죽음도 초월한 것이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되심은 변치 않는 진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진리는 세상 끝날까지, 땅끝까지 전해져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낳게 되었다. 십자가는 고난과 고통, 희생이지만 십자가의 결과는 부활이다. 새로운 생명이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단절이 아니라 지속이다.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다. 긍정이고 사랑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종교이다.

성도는 화해케 하는 자요, 복음의 자유를 전하는 사명을 받은 자다. 반면에 사단은 오늘도 분열과 분리를 하는 존재이다. 막힘 담을 쌓는 자요, 휘장을 굳게 붙들고 있는 자다. 사단을 따르는 자는 당을 짓고 시기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다. 사단은 파괴와 혼동과 불합리한 세상을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십자가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사단과의 싸움이다. 사단이 원하는 분열, 시기, 당파, 공격, 싸움, 경쟁, , 분리, 절망, 혼돈을 좋아하는 자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자다. 반면에 성도는 십자가를 붙들고 십자가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받은 자다. 사명을 받은 자로서 책임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