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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4일(금)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4일(금)

후앙리 2025. 4. 4. 05:34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14)

 

+ 말씀 설명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섬긴 사람은 한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값진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다. 이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그 비싼 향유를 허비했다고 불평하였다. 향유를 팔아 그 값으로 가난한 자에게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여인을 책망하였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괴롭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죽음의 장례를 예비한 향유라고 하시면서 이 여인의 행한 일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은 어디서나 기억하게 되리라고 하셨다.

이 여인의 향유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구세주임을 선포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찬양하는 행위였다.

 

+ 묵상과 적용

나는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주님을 위해 여인처럼 헌신하며 드린 것은 어떤 것인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옥합을 깨뜨려 주님 나라를 위해 드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세상의 안정을 구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헌신하게 하소서.

2. 나이지리아 정부가 증가하고 있는 테러 단체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과 조치를 마련하여 기독교인들과 시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 성경 본문(14)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 나의 어렸을 때의 삶과 교회<이영 선교사의 자전적 자기 관리와 계발>

 

어렸을 때의 가정

나는 전남 영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이 4명이고 누나가 한 분 있었다. 누나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농사짓는 농부였지만, 소유한 논과 밭이 거의 없었다. 우리 집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반면에 부모님은 부지런하셨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다. 나는 막내로서 부모님과 형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밥이 부족해 배가 고픈 적은 있었어도 가족의 사랑에 배고픈 적은 없었다. 사랑이 가득한 화목한 가정이었다. 가족 안에서 불화하여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이런 어렸을 때의 집안 배경은 나의 성격과 인격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신앙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형님들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 나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나의 숙모님이 신실한 신자여서 나를 교회로 인도하셨고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목사와 선교사로 사역을 하는데 기도와 물질, 그리고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2021년 코로나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숙모님은 나의 영적 부모로 나의 신앙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신 분이셨다. 숙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녀들에게 하신 유언은 내가 죽으면 영이를 너희가 나 대신 돌봐야 한다였을 만큼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셨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대학 입학식 날, 어머니는 신학 대학원 1학년 어버이날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숙모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내가 신학 대학에 입학한 후에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여 집사로 섬기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부모님이 신앙을 고백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비록 두 분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내게는 큰 위로와 안심이 되었다.

 

나의 교회 생활

나는 집에서 4km가 넘는 교회를 걸어서 다녀야만 하던 상황에서 한 번도 주일에 빠지지 않고 교회 생활을 하였다. 초등학교 때 교회에서 받은 시상품들이 나의 학용품의 거의 다였을 만큼 집은 가난했고, 교회는 나의 삶에 중요한 도움 처였다. 초등학교 때 교회에 다니면서 목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그때 당시에 나에게는 불가능한 꿈이었다. 내가 목사가 되는 것은 목사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하나의 이상일뿐이었다. 시골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용품이 없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 이외에는 참고서 한 권도 사지 못한 그런 환경에서 목사가 되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주일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갔고 그 교회 생활을 즐겼다. 친구들을 교회로 초청하는 것이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요 예배는 물론이고 구역예배(어린이는 유일하였다)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동네 성도님들 집에 돌아가면서 금요일 밤에 드리던 구역예배는 지금도 내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만큼 참 좋은 추억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초롱불을 켜고 부르던 그때의 찬송가들은 지금도 향수를 일으키는 좋아하는 찬송가들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새벽기도회도 열심히 다녔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중고등학교를 통학해야 할 만큼 학교가 멀리 있었는데, 나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차비를 모아서 전부 헌금을 드렸다. 버스를 타는 대신에 나는 학교까지 걸어서 다녔고 통학길에 영어 단어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 가고 오는 길에 영어 단어를 외우며 차비를 아껴 교회에 헌금을 드릴 때의 마음의 만족함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남아 있다. 그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초등고등학교 때 믿지 않는 부모님이었지만 교회 가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으셨다. 다만 주일날 농사일이 많을 때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교회에 가느라 긴장했었던 것 이외에는 가정의 핍박은 없었다. 집에서 제사를 드려도 나는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유교의 전통이 강한 집안에서 크게 나무라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은 나는 핍박이 올 때 핍박을 견딜만큼 담대하지 못한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부모님과 친척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핍박하지 않으시도록 하셨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고등학교 생활

내 인생에서 가장 패배감을 느낀 것은 고등학교 진학을 도시(광주나 전주)로 가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면 단위 중학교에 다녔는데,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도시로 진학을 하였다. 그만큼 읍이나 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대학을 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도 대학을 가고 싶었기에 고등학교 진학을 도시로 가기를 바랬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조금의 여지를 두지 않으시고 도시로 보낼 형편이 아니기에 시골 고등학교에 가라고 하셨다. 그때 가졌던 나의 절망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이었다. 왜냐하면 시골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의미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실제로 서울로 대학을 간 동창생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재수를 하여 총신대학 신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내가 유일하였다. 그만큼 대학을 가고자 하는 학생이나 공부를 좀 하는 친구들은 고등학교 진학을 도시로 하였던 것이다. 도시로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나는 모든 인생이 끝난 것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대학을 가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였는데, 대학에 갈 수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으니 인생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고등학교 생활을 하였다. 친했던 친구 중에 도시로 갔던 친구들이 주말이면 집에 올 때 나는 부끄러움과 수치가 가득했고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친구들을 피해 다니면서 만나지 않았다. 그만큼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것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재수를 할 수 있었고 비록 재수해서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내가 꿈을 꾸었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대학에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좌절도 내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고, 내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대학 입학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비록 어렸을 때의 가난과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할 수 있다. 내가 전에 기록한 글이 있어서 올린다.

 

<는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내가 과연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있는가? 과연 선교사역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라는 고민이었다. 이 고민은 선교사로 헌신한 다음에도 내게 다가오는 심각한 문제였다. 마음은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실제로 선교사가 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교사가 되려면 건강해야 하고, 설교를 잘해야 하고, 언어도 잘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능력과 재능도 있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은사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교사는 대담한 성품과 어려움에도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인내심이 강하고 열정적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마음에 그리고 있었던 선교사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가 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역을 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능력이 부족해서 선교사역을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같이 능력이 없는 자는 없을 것이기에. 그래 선교사로 가자. 젊은이들에게 나 같은 자도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생각이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다.

그 후에 나는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능이나 은사, 그리고 외형적인 면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것이 없었던 내게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놀라운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시골에서 자랐다. 누구보다도 시골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시골에 자란 것이 내게는 자랑스러움보다는 열등감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수 있는 재능을 갖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반전은 선교지에서 일어났다. 선교지에서 하나님은 나의 어렸을 때와 너무나 비슷한 시골에서 사역을 하도록 하셨다. 그곳에서 나는 현지인들이 어떤 마음과 형편으로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나의 자녀들은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시골 생활과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나는 선교지의 시골 사람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만약 도시의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이런 시골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으니 그들에게 복음과 하나님을 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란 것을 말하면 그들은 오히려 나를 통해 위로를 받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자신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는데 이곳 선교지 시골 마을로 보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나를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게 하셨구나.”하는 것이었다. 내가 부끄럽고 약하게 생각하였던 것이 선교지에서 오히려 좋은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도 강하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나간다면 아름다운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땅을 밟으며.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