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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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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요셉의 용서 본문
한국의 선교 본부에서 일하는 친구 선교사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본부 사역자들과의 어려운 관계에 대한 하소연이 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보낸 친구는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면서 상대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하였다. 오죽했으면 선교지에 있는 내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의 아픈 사정을 털어 놓았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이렇게 아플 때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입장과 힘든 것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 선교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픈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선교사가 힘든 중이라도 상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도 동시에 해 본다.
오늘 아침에 본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창세기 42장 21절의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는 말씀을 묵상하였다.
이 말씀은 요셉의 형들이 총리 요셉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자책하는 장면이다. 이전에 아우 요셉의 애걸함을 듣지 않았기에 자기들의 애걸함을 애굽 총리가 듣지 않는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전에 겪은 것과 같은 벌을 자신들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형들은 자신들이 아우 요셉의 간구함을 거절했던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요셉과 같은 상황에 처해 보니 그제야 ‘요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전에 형들이 요셉이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들은 요셉이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요셉 때문에 힘들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셉의 아픔과 괴로움과 애걸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형제들의 결과는 처참하게 나타난다. 그때 요셉의 괴로움을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았기에 그들이 지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요셉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 요셉은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형들이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극적인 만남을 위해서 자신을 잠시 숨기고 형들을 외면하는 척한다. 요셉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의 고통도 직접 겪어 보았고 지금 당하는 형들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때에 형들도 고통스러운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이제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 형들은 총리가 누구인지를 몰랐지만 요셉은 형들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신다. 요셉이 형들의 고통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그 심한 고통을 당해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경험하셨고 현재 우리의 고통의 크기가 얼마인지까지 아신다.
요셉은 무엇보다도 형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요셉은 보복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도 긍휼의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말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말로 아신다. 요셉의 형 르후벤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가 죽을지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요셉의 긍휼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도 장담하고 자신만만해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의와 노력이 하나님의 긍휼을 앞설 수 없다.
내가 상처를 받아 많이 아플 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헤아리면서 동시에 상대의 아픔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어떤가? 내가 아플 때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생각해 주는 성숙한 사람인가? 아니다. 나도 내가 아프다고만 한다. 다른 사람이 아픈 것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는다. 본부 선교사 친구와 함께 나도 다른 사람의 아픔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고통을 알고 계시며, 내가 고통을 이길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까지 알고 계신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 긍휼로 오늘도 살아가게 하신다. 아울러 내가 지금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내가 이전에 누군가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의 잘못을 돌아보는 성숙함을 위해 오늘도 내게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자. 고난과 아픔은 나의 잘못과 부족함을 깨우치는 도구가 되도록 잘 활용하자. (20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