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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고장 난 자동차와 선교 본문

선교와 영성/선교는 삶이다

고장 난 자동차와 선교

후앙리 2020. 4. 22. 22:14

에콰도르에서는 자동차도 선교 사역에서 일익을 감당한다. 이것은 자동차가 있으면 기동력이 있어서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자동차를 관리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자동차가 고장이 났을 때, 그것을 수리하는 과정이 선교사로서 훈련받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가 고장 나면 고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만약 길에서 고장이 나면 전화 한 통화로 보험회사의 견인차를 부를 수 있다. 고장 난 차를 자동차 정비소에만 갖다 놓으면 그곳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점검하고 수리한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부속을 따로 사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곳 에콰도르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났을 때에는 차 주인이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운전하는 중에 길에서 차가 고장이 나서 멈추게 되면 자동차 주인이 어떻게든지 정비소까지 운반해 가야 한다. 에콰도르에서는 견인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옆에 지나가는 차 주인에게 부탁을 하여 쇠줄로 두 차를 연결해서 정비소까지 끌고 가야 한다. 자동차 정비소에 도착하면 정비공들이 차를 점검해서 부품이 필요할 때는 자동차 주인이 직접 구해 와야 한다. 부속품이 부속품 가게에 있어 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부속품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미국이나 한국에 부탁을 해서 공수해 와야 한다. 에콰도르에 부속품이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너무 비싸서 부담이 될 때도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자동차 부품을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차종을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장 난 부품을 구하기 힘들 때, 또 한 가지의 방법이 있다. 고장 난 부속품을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드는 것이다. 이 나라에는 직접 부속품을 만드는 곳이 있다. 백미러같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은 플라스틱 가게에서 직접 그 부속품을 만든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자동차 주인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부속품을 구입해서 정비소에 수리를 맡긴다. 수리하는 사람이 고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면서 재촉하지 않으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한 정비공들은 자주 좋은 부속품을 떼어 다른 차에 바꾸어 끼우기도 한다. 그러기에 정비하는 동안은 차 주인이 직접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자동차 정비소는 대부분이 소규모이다. 소규모이기에 모든 부분을 다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만 고친다. 그래서 여러 곳의 정비소를 찾아 다녀야 할 때도 있다. 자동차가 한번 고장이 나거나 소모품을 갈 때는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하게 되기에 선교사는 새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선교사에게 새 차는 사치일 뿐 아니라 그만한 재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기에 자동차를 고치는 과정은 선교사에게 있어서 하나의 훈련의 장이 되는 것 같다. 그중의 하나는 자동차를 고치면서 현지 문화와 사람들을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때로 한정된 그리스도인들만 만날 가능성이 있다. 사역을 할 때는 정해진 사람들만 만날 수 있지만, 자동차를 고치면서 기다리는 동안은 현지인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기다리면서 정비하는 사람들, 차를 고치러 오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이들의 생활 방식과 세계관을 관찰하고 배울 수 있다. 현지인들이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동안 선교사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지인들의 일들이 왜 그렇게 비춰졌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자연스럽게 전도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차를 고치면서 어려운 삶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사는 현지인들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에콰도르 사람들에게는 자가용이 없다.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일수록 살기 위해 고된 일을 한다.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다. 그들을 보면서 현지인들보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선교사인 내가 오히려 더 불평하면서 산다는 것을 깨닫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고치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잘 기다릴 줄 알아야 하지만 나는 잘 기다리지 못한다. 그 순간에 나 자신의 인내의 부족을 깨닫게 된다. 에콰도르의 사람들은 잘 참는다. 언제 어디서나 잘 기다린다. 당장 일이 안 되어도 웬만한 일로는 항의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그들의 성격과 문화를 배우게 된다. 그들은 내게 급한 성격과 습관대로 사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님을 가르쳐 준다. 기다리고 불편한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내의 훈련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고치는 것도 선교사에게는 하나의 사역이 되는 것 같다. 단순히 시간 낭비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선교사의 생활 자체가 선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사는 한국인 선교사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줄여 사역을 한다면 더 좋겠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 자체도 선교 사역의 시간으로 포함시키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직접 시장을 보며 사람들과 마주 대하는 것도 사역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한국에서 하지 않은 많은 조리 과정을 선교지에서 하는 동안 선교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식사 준비하는 그 시간 자체도 선교 사역이라는 생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를 고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선교사의 삶의 일부분이며, 사역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차 고치는 시간을 따로 분리해서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시간도 선교사의 삶의 일부분이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선교사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교사의 사역과 삶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시간 낭비, 불편함, 고생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성숙한 선교사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고장이 잘 나는 중고차도 선교사에게 새 차보다 더 유익한 도움을 주는 선교의 중요한 도구이다. (20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