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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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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필리핀을 향하여 본문
필리핀을 향하여(이메일로 드리는 민다나오 소식1)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저희 가족은 이번 주 목요일(12월 13일)에 필리핀으로 떠납니다. GMP 사무실의 사역을 마치고 지난 두 달 동안 선교지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느라 조금은 분주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짐도 붙이고 현지에 집도 얻었습니다. 이제는 출발하여 그곳 생활에 잘 적응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로 사랑과 관심과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선교의 동역자들에게 함께 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모든 분 들께 이 메일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선교사는 정말 기도로 먹고 삽니다. 여러분의 기도로 적응과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필리핀에 가서 자주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영, 김진희 선교사 드림 2007.12.10
기도제목
1. 12월 13일 날 출국하는데 여행에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시도록/ 짐을 붙였는데 잘 도착할 수 있도록
2. 한국에 두고 가는 이 새가 마음에 요동하지 않고 평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희래가 12월 14일에 편입 시험을 치르는데 잘 치를 수 있도록
3.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4. 필리핀 현지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필요한 물건을 구 할 수 있는 재정이 채워지도록)
5. 현지 언어를 잘 습득하고 더운 날씨에 적응을 잘 하도록
6. 현지인을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이 충만한 선교사가 되도록
7. 한국 교회, 후원자들, 선교단체와 세계 선교에 좋은 동역을 이룰 수 있도록
8. 현지 사역과 동역자를 적절하게 예비시켜 주시도록/민다나오에 신실한 교회와 지도자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9. 필리핀 땅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복된 땅이 되도록
이메일주소: juanlee@naver.com
홈페이지 주소: juanlee.tistory.com(구: juanlee.com)
출국전 전화:010-7750-6054
후원계좌: 303-04-00000-264(예금주: 한국 해외 선교회: 제 개인 가상계좌입니다.)
다음은 지난 주일날 마지막으로 파송교회인 동현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참고로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함께 보내드립니다.
행전20:24: 복음을 위한 삶 2007.12.9 동현교회 오후예배
서론
제가 동현교회에 선교사로 온지가 벌써 14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 선교사 후보생으로 와서 1년 정도 사역을 하다가 남미 에쿠아돌에 선교사로 가서 8년 반을 사역하다가 미국에서 잠시 안식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2년 동안 선교부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동현교회에서 성도님들과 함께 사역을 하면서 교제할 수 있는 영광도 맛보았습니다. 특별히 한 달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2년 동안 오후 화목한 예배시간에 말씀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기쁨이었고 성도님들과 말씀으로 교제할 수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필리핀이라는 새로운 선교지로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선교지인 필리핀으로 가면서 많은 분들이 “자녀들은 데리고 가느냐?”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큰 아이는 부산에 있는 선교사 자녀학교인 지구촌 고등학교에 다니기에 뇌두고 가고 둘째만 데리고 갑니다. 필리핀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도 많이 하시는데 민다나오로 갑니다. 민다나오섬은 모슬렘 지역이고 조금은 위험한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저희들은 에쿠아돌에서 사역했던 것처럼 지도자를 재교육하고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다시 선교지로 나가면서 오늘은 마지막으로 하는 설교입니다. 이 시간을 빌어 그 동안, 14년 동안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간은 그동안 하나님이 부르신 선교사로 저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제 자신의 사명을 다짐하는 마음으로 선교사로서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본문으로 선택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밀레도라는 곳에서 한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 고별 설교를 하는 것이다. 이 고별 설교를 하자 에베소 장로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며 작별을 한다. 고별 설교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변호와 그리고 장로들에게 당부한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자신은 어려운 중에도 복음을 전하며 살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은 오늘 본문 24절에 어떤 각오로 살아왔는가에 대해서 말씀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말씀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명과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다. 그 일에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데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은 동물들과 달라서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목표가 없으면 참다운 사람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돈이나 명예나 출세일수도 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목표는 다른 사람 따라하는 것이 목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더 나은 것, 이것이 목표일 경우가 많다. 기준이나 목표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다. 요즈음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서 답답한 것이 있다. 그것은 좀 자기 얘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상대방 얘기를 한다. 상대를 비난한다. 자기 삶의 방향이나 철학이 부족한 것 같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목표가 아니라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혹은 다른 사람에 따라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에게는 바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자신의 삶의 목표였다.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살아있는 이유였다. 이 복음 증거 하는 일은 사도 바울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생애 최고의 목표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목표가 된다면 그 인생은 당연히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생의 목표가 아니라면 그 사람은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돈을 벌어도 복음 증거 하는 일에 쓰여 진다면 그것은 목표가 분명하고 돈을 버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복음을 증거 하는 목표를 이루는데 쓰이지 못하면 그 돈벌이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가 왜 사랑을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의 목표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기에 복음 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하기에 사랑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용서 합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고 복음 전하는 목표를 이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서구 교회가 교회의 참된 목표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글로 비판을 하였다. 교회가 세워진 목표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예화이기에 한번 읽어 드리겠다.
“자주 배가 파선하는 위험한 해안에 난파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작은 인명 구조소가 있었다. 움막처럼 보잘것없는 집과 작은 배 한 척 뿐이었지만 몇 사람의 헌신적인 일꾼들이 불철주야로 바다를 살피면서 난민 구호에 전력하였다. 숱한 사람들이 이 작은 인명 구조소에 의해 구출되었고 이 집은 점점 유명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구출 받은 사람들과 이 일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인명 구조소와 관계를 맺고 싶어 했고, 그들의 시간과 돈을 바치게 되었다. 새로운 배들을 매입하고 선원들이 증원되면서 인명 구조선도 그 규모와 시설이 점점 비대해지고 현대화 되었다.
좋은 기구와 시설이 구비되어 구조소는 회원들이 즐겨 모이는 사교 장소처럼 되어갔다. 인명 구조 작업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줄어들었고 마침내 자기들이 모은 돈으로 구조선에서 일할 선원들을 고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신 구조 활동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인명구조에 대한 이상은 화려하게 변모한 인명구조소의 장식품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주요한 행사를 여는 큰 방에 구조선을 상징적으로 들여다 놓고 그것을 예배하듯 대하였으나 인명 구조에 대한 열정은 냉각되어 있었다.
그 즈음에 큰 배가 파선하여 고용된 구조선 선원들이, 익사 직전에 구출한 난민들을 데리고 왔다. 누추하고 병든 사람들도 있었고 흑인과 동양 사람들도 있었다. 아름답게 장식된 인명 구조소가 삽시간에 더러워지고 소란스럽게 되자 구조선 사람들은 불쾌해졌고 새로운 대책마련에 나섰다. 관리 위원회가 모여, 난파당한 사람들은 구조선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 간이 목욕실을 만들어 먼저 깨끗케 한 후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그 다음날 구조소 회원들 간에 의견 마찰이 노골화되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더 이상 구조 활동을 계속하기를 반대하고 자기들의 사교클럽으로 그 집과 시설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몇 사람만이 집과 시설이 원래 인명조를 위한 것임을 주장했으나 투표결과 그들의 의견은 관철되지 못하였다. 만일 그들이 계속해서 인명구조 활동을 원한다면 다른 곳에 구조소를 만들라는 권유를 받았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 해가 지나자 새로 시작했던 구조소도 처음의 것과 같은 현상을 되풀이 했고 다시 구조 사업에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구조소가 세워졌다.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지금도 그 해안지대에는 사교장들로 변한 인명 구조소들만 있을 뿐 자주 난파하는 배에 탄 대부분의 선원들은 구조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 이런 글이다.
여기서 인명 구조소는 교회다. 교회가 사명과 비전과 본질을 잃은 것을 비유로 말하고 있는 이야기다. 서구 교회가 사람을 구원하는 사명을 잃어버렸기에 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교회 자체적으로 즐기고 교회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교회가 예배하고 찬양하고 성경공부하고 교제하고 하는 모든 일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기를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목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 교회는 이 일을 최우선으로 해서 예산도 짜야 하고 이 일을 목표로 해서 교회가 진행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각 개인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분명한 목표다. 이 분명한 목표는 사도 바울 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고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명을 따라 사는 인생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복음전하는 사명을 잃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사명을 잃으면 살아 있으나 죽은 교회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교회는 한순간도 교회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음 전하는 사명을 확인하여 다시 회복하는 것만이 참된 교회가 되는 길이다.
사명에 따라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사람은 의미와 가치에 따라 산다는 말이다. 보이는 것과 누리는 것으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과 의미와 가치에 따라 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후 6장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이런 고백을 한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겉으로는 고난을 당하며 살지만 내면으로는 참된 삶을 산다고 말한다.
“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이 말씀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 같으나 실재로는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처럼 분명한 목표를 따라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청년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이 기준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고 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야 한다.
이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면 이 목표를 이루는 일은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고 때로는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길이라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 사명을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고 살았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복음 전하는 일에 생명 바쳐서 사는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것이다. 고생이 되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
오늘이 선교지에 다시 나가기 전에 마지막 설교이기에 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조금 나누고자 한다. 제 자신 이야기라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지만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하는 의미로 드리는 말씀이기에 이해해주시기를 바란다.
제가 선교지인 필리핀으로 다시 나가고자 할 때 사람들은 제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왜 한국에서도 사역할 수 있는데 굳이 선교지로 나가려고 하는가? 왜 고생의 길을 또 다시 걸어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였다. 저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제 마음속으로 이런 대답을 한다.
“이 세상이 전부라면 저도 선교지로 안 갑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이 보시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사람은 사명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위해 사는 인생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속해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그 생명을 드린 것을 생각하면 제가 당하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선교지에 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제게는 특권이요, 이것이 행복입니다” 라는 대답을 속으로 하면서 기도합니다.
사실 저도 사람이기에 선교지로 가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가면서 많은 고민도 했고 힘든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짐을 다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벌써 4번째 하고 있습니다. 12년 전에 선교사로 처음에 에쿠아돌에 나갈 때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선교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8년 반을 사역하고 다시 미국으로 안식년을 가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에 다시 정착을 하였습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새로운 사역지인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또 다시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들까지도 왜좋은 미국에서 살지 한국으로 들어오느냐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선교부에서 일하면서 고생을 할 것이 뻔 한데 왜 그 길을 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이 좋지 않아 오히려 외국으로 나가는 판국에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이들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저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명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선교부에서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고생의 길 인줄 알면서도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기에 하나님이 부르시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참 좋은 교회에서 설교를 잠시 하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마침 목사님이 없었기에 저를 목회자로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인 에쿠아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갈망하는 믿음이 있기에 저는 한국을 선택하였습니다. 한국에서 2년 동안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고 저는 그 일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사역을 마치고 다시 선교지로 가고자 합니다. 다시 선교지로 가면서 4번째 짐을 싸는데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기에 오히려 더 힘들었습니다. 처음 선교지로 나갈 때는 그래도 무식이 용감하게 한다는 말처럼 몰랐기에 어려운줄 모르고 도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세 차례나 전혀 새로운 문화권에 적응을 해 보았기에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 알기에 오히려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고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기에 가고자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본부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에 선교사님들을 방문하면서 선교지를 갈 때마다 선교사로 다시 가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했습니다. 선교지에서 일하는 선교사님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선교지로 다시 가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은 저를 필리핀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그리고 그것이 사명이기에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 길이 어렵고 힘든 길인지 알지만 그러나 그 길은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행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가 잘 나서도 아니고 제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저는 사명으로 갑니다. 그 길이 행복해서 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기도로서 저와 다른 선교사님들을 위해 선교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사명을 따라 살고 이 사명을 잃지 않고 살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힘으로는 이 사명을 따라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계속해서 기도로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이 선교에 동참하실 때 선교사님들이 누리는 사명과 가치와 의미를 여러분도 같이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새로운 선교지로 나가면서 바울의 고백을 더욱 마음속에 새기고자 합니다. 저는 바울 같은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고백을 할 자신감도 가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백했던 그 고백을 마음속에 다짐할 때 바울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제게도 함께 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제가 좋아하는 찬송을 한곡 부르겠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좋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다.
사람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 아니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한번 산다면 잘 결정해야 한다. 한번 살기 때문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후회하기 전에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조금도 아깝지 않는 인생, 그 인생이 가장 행복하고 값진 인생을 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한다. 복음 전하는 일에 최종적인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복음에 도움이 되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살아야 한다.
고통스런 인생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복음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행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십시오. 손해와 고통을 피하지 말고 받아드리고 복음을 위해 전진하십시오. 그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감당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에 인생을 투자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일이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모든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