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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현지인 중심의 선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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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중심의 선교

후앙리 2019. 5. 24. 22:56

 

선교는 선교사 중심이 아니라 현지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지인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지인 중심이 아니라 선교사 중심이 될 때가 있다.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고 선교사가 주인이 되는 선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로는 현지인 중심의 선교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선교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을 본다.

 

필자가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현지인 중심의 선교를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선교사가 새로운 일을 스스로 사역을 개척하기 보다는 선교지에 이미 존재하는 단체나 교회에 들어가 그 단체의 지도력 아래에서 사역하는 것임을 배웠다. 물론 이럴 경우는 토착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선교지에서 가능한 일이다. 교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교회와 기독교 단체가 있는 곳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사역하는 것이 바로 현지인 중심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에콰도르에서 협력해서 같이 사역했던 동료 선교사와 각자 다른 현지인 단체(교회 연합회와 현지인 선교단체)에 소속이 되어 그 단체의 선교사로 선교사역을 하였다. 필자는 교회 연합회, 즉 노회나 총회와 같은 기관에 소속되어 선교사로 사역을 하였고 필자의 동료는 현지인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사역을 하였다. 필자는 교회 연합회의 단체에 소속되어 모든 사역을 연합회의 회장과 임원들의 허락 하에 진행하였다. 또한 필자의 사역과 일상의 생활에 대해서도 연합회에 보고하였다. 그들이 원하지 않는 사역은 할 수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필자가 교회를 개척할 때도 현지인 교회에서 파송하여 개척하였다. 선교사 중심의 선교는 보통 선교사가 현지인을 한 지역에 보내어(파송하여)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도록 한다. 그러나 필자는 현지인 교회의 지교회로, 현지인 교회가 원하는 지역에서 개척하여 목회를 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현지인 중심의 선교를 알게 한 선교훈련원에서의 배움에 감사하고, 필자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좋은 현지인 단체를 연결하여 그렇게 사역할 수 있도록 환경을 허락하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러면 현지인 중심의 선교란 무엇인가?

1. 현지인이 주인이 되는 선교가 현지인 중심의 선교다. 현지인이 주인이 되면 선교사는 종이 되는 것이다. 종은 주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한다. 주인이 원하지 않는 것을 종이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자신이 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이 원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선교사가 필요한 사역이 아니라 현지인이 필요한 사역을 하는 것이 현지인 중심의 사역이다. 지금 한국인 선교사들은 사역을 할 때 진정으로 선교사의 눈으로, 선교사의 필요에 따라, 선교사가 하고 싶은 사역을 하고 하는지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교사는 현지인 선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현지인이 중심이 되는 사역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성육신의 사역을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인간의 편에서, 인간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성육신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과 이해를 고려해서 성육신의 방법을 선택하신 것이다.

 

또한 현지인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현지인이 선교사보다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복음화는 결국 현지인이 주도권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런데 선교사가 주도권을 가지고 하게 되면 현지인에 맞지 않는 선교를 할 가능성이 있다. 선교사가 주도하게 되면 현지인은 독립하기 어려워지고 복음화는 더욱 어려워지게 될 수 있다. 선교사는 현지 상황을 모르고 자신의 입장에서 사역을 함으로 오히려 복음의 확장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현지인들이 자발적인 마음이 일어나서 하지 않게 되면 결국 수동적이 되어 선교사가 있을 때에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교사가 철수하게 되면 그 사역이 사라질 수 있다. 선교지 현지인들이 자립, 자전, 자치를 해야만 독립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현지인이 계속 이어서 할 수 있는 사역을 해야 한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갑자기 철수하게 될 때, 현지인이 그 사역을 이어받지 못하는 사역이라면 그것은 선교사 중심의 선교가 된다. 그래서 선교사는 내일 선교지를 떠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선교사가 내일 선교지를 떠나더라도 현지인이 이양을 받아 계속해서 그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역을 해야 한다. 선교사가 진행하다가 이어갈 수 없는 사역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선교사가 갑자기 떠날 때 그 사역이 중단한다면 선교사의 그 동안의 사역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이어받을 수도 없는 프로젝트는 선교지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과 재정과 정력의 낭비가 될 뿐이다. 나중에는 그 선교사 중심의 프로젝트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지인이 중심의 선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선교사들은 현지인 중심이 아닌 선교사 중심의 선교를 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2. 현지인 중심의 선교란, 가르치는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선교를 하는 것이다.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뒤에 서는 것이다.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서는 것이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는 것이다. 이런 모습의 선교를 성육신의 선교라 할 수 있다.

 

현지인이 주인이라면 당연히 주인이 가르치고 종은 배워야 한다. 선교사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종이 가르치려는 하는 것과 같다. 선교사가 가르치지 않으면 선교사로 갈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선교사가 가르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배움의 자세로 선교하라는 뜻이다.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배우라는 것이다. 배우면서 가르치라는 것이다. 현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이 잘 이해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이다. 선교사가 배우지 않고 가르치기만 한다면 때로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을 먼저 알아야 그들의 필요에 따라 가르칠 수 있다.

 

필자도 현지에서 선교사로 있을 때 초창기에 얼마나 많이 가르치는 선교사였는지 모른다. 선교지에 도착해보니 가르칠게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가난하였다.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지 못하였다. 게을러 보였다. 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가르쳤다. 복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과 태도와 무지함(?)에 대해 가르치고 지적하였다. “공부해라. 열심히 일해라. 한국을 보라. 한국은 자원이 없어도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부자 나라가 되었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열심히 한국을 가르쳤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였다. 몇 년이 지나고 그 때를 기억하면서 필자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현지인들에게 먼저 배워야 하는데, 먼저 가르친 것이 후회되었다.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였고 그들의 내면의 모습, 문화의 독특함, 그들의 장점을 보지 못하고 선교사의 입장에서, 외부 인이 주인인 것처럼 가르친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것에 대해 회개하였다.

 

선교지에 가보면 가끔씩 선교사들이 현지인의 위에서 왕 노릇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선교사는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집에서 산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산다. 물론 선교사가 외국인으로서 현지인과 똑같이 살 수는 없다. 선교사만의 독특한 상황이 있다. 자녀교육을 현지인과 똑같이 할 수 없는 분야라든지, 자동차를 소유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치안으로 좀 더 안전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든지, 외국인이기에 써야 할 재정적인 지출이 많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인과 많은 괴리가 있는 삶을 사는 선교사들을 볼 수 있다. 현지인이 볼 때 선교사인지, 아니면 돈 많은 사업가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현지인들이 선교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부분을 너무 많이 가지고 선교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이 볼 때 선교사는 왕이요, 현지인은 백성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교사가 잘 살고 현지인이 가난하게 사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라고 말하면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선교사의 삶의 모습과 그의 태도에서 최소한 선교사라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살아야 한다. 선교사이기에 뭔가 다르다는 것을 현지인이 알도록 살아야 한다. 해외에서 온 사업가나 외교부 공무원이나 지사원이라는 인상 같은 그런 모습과는 뭔가 다른 선교사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마구간에 나시고 나귀를 타시고 머리 둘 곳이 없이, 내일 먹을 것 염려하지 않고 사셨던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겸손하고, 온유하고, 검소하고, 현지인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현지인이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선교사 스스로 가진 것이 있다고 뽐내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항상 현지인 때문에 선교사 자신이 존재한다는 빚진 자의 심정을 갖는 것이 바로 현지인 중심의 선교다.

 

며칠 전에 선교사가 현지 교회 목회를 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어떤 선교단체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주제의 의미는 선교사는 현지 목회가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있는 주제였다. 다른 한편으로 현지인이 주인이기에 현지인이 직접 자신들의 목회를 해야 하고 선교사는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들어있다. 결론은 선교사도 현지 교회에서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목회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가 어떤 자세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현지인 중심의 사역을 한다면 그것이 목회든, 현지인의 부족한 부분을 돕는 사역을 하든 상관없다. 현지인이 원하는 사역,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역, 그들이 주인이 되는 사역이라면 선교사는 어떤 사역이라도 그 사역의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교사는 현지인이 선교지의 주인이 되어 그들의 나라에 복음이 확장되고 교회가 세워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지인 중심의 선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