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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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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선교와 영성/선교는 삶이다 (95)
선교교육 연구원(IMER)
이번이 선교지로 오는 두 번째여서인지 처음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떠나왔습니다. 생각보다 긴 안식년(본국 사역)을 가져 어느덧 한국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에 다시 떠나야 했던 저희들은 가족들이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국에 정착을 잘했으니 한국에서 계속 사역했으면 좋겠다는 권면과 바람과 압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선교사는 선교지로 가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와 또한 이곳 현지인들과의 약속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바람을 뿌리치고 와야만 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렇게 또 헤어지느니 차라리 만나지 않은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그분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기에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점점 더 나이가 ..
에콰도르에 2기 사역을 위해 도착하기까지 한국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안식년을 보내고 한국을 떠나오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내 마음에 부담을 주고 결정하기 어려웠던 일이 있었다. 첫 텀(1995년 2월~1998년 12월)에 사역하는 기간에는 몰랐었는데 안식년 때 한국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장모님에 대한 것이다. 4년 전에 우리 가족이 갑자기 선교지로 떠난 후에, 큰 아이 새를 4살 때까지 키우신 장모님께서 손녀의 빈자리와 딸과 사위를 떠나보내신 마음의 허전함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집에 계시면 딸 가족이 보고 싶어 그냥 있을 수만은 없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시면 집 밖으로 나가 하루 종일 밖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시다가, 저녁 때 ..
교회 연합회(AIEP) 목사들이 우리 가정이 다시 에콰도르에 돌아온 것에 대해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하지 않고 거부하지도 않고 환영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니, 한국에서 떠나오면서 가졌던 슬픔을 달래는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도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았다면 조금은 서운했을 것이다. 이분들과는 지난 첫 텀인 4년 동안 함께 선교 사역을 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니었고, 나는 단지 작은 일을 했을 뿐이다. 특별하게 눈에 보이는 사역을 한 것도 아니다.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이분들을 위해서 돈으로 일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에 있어서는 이분들에게 참으로 인색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돈으로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