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Today
- Total
선교교육 연구원(IMER)
+ ‘아멘’ 신앙 본문
어떤 목사님이 말하기를 한국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아멘’이 없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아멘’은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아멘’은 동의한다는 뜻이다.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아멘’ 신앙만큼 아름다운 신앙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다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멘’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왜 ‘아멘’이 없어져야 한국교회가 살수 있다고 했을까? 아마도 ‘아멘’의 부정적인 요소 때문일 것이다. ‘아멘’이 아름답고 좋은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의 반응이지만, 그런 좋고 아름다운 기능이 악용되었거나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에서 왜 ‘아멘’이 오용되었을까? 그것은 ‘무조건’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조건 ‘아멘’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목사들의 설교에서 ‘무조건’‘아멘’을 사용하도록 강요한 것은 문제가 있다. 목사들의 설교를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 까지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목사들의 설교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목사들의 설교도 잘못될 수 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에서 많이 벗어난 설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목사들은 이런 설교도 ‘아멘’을 외치도록 한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가 아닌 목사들의 말에도 ‘아멘’을 하게 한 것도 문제다. 일부 목사들은 자신들의 계획과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조건 ‘아멘’으로 응답하도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서는 ‘아멘’이외의 다른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교회에 반대되는 말이나 의심되는 말에 대해 질문조차도 못하게 하였다. 목사와 성도들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였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성도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아멘’을 외치게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부작용은 목사들의 잘못이나 말에 대해 성도들이 반론을 제기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목사들의 말에만 ‘아멘’을 하게 함으로 다른 내용(책이나 강의 등의 지식)을 멀리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성도들의 무지와 맹목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는 반지성주의이며, 권위주의의 산물이 되었다. 그리고 기복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큰 문제점은 ‘반지성주의’, ‘맹목주의 신앙’, ‘권위주의’, ‘기복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바로 ‘아멘’만을 외치게 하는데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로 성도들은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설교만 들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도들은 깊이 생각(묵상)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목사들의 설교에 ‘아멘’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들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목사들이 정해준대로만 따라가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이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 그저 목사들의 목회에 맹종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성경공부를 해도 목사들의 가르침만 있지 진지한 토론이 적다. 이 모두가 ‘아멘’신앙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예언에 ‘아멘’하고 응답하였다. ‘아멘’의 순기능을 활용한 것이다. 즉, 하나냐가 했던 예언은 이스라엘이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예레미야는 ‘아멘’이라고 응답하였지만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레미야는 ‘아멘’을 외치고 나서 하나냐의 예언의 말씀의 진실여부에 대해서 따져보아야 한다고 했다. 즉, ‘아멘’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아멘’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따져 물었던 것이다. 그저 ‘아멘’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야 선지자의 잘못된 예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지적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아멘’신앙의 아름다움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존경의 표시로 ‘아멘’을 외쳐야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실(목사들의 잘못된 설교나 목회 방침)에 대해서는 이성과 지성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성과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 것의 뿌리가 ‘아멘’에 있다면 그런 ‘아멘’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멘’이 사라져야 한국교회가 살아난다는 한 목사님의 말씀대로 ‘아멘’신앙을 지켜야 하지만 잘못된 ‘아멘’의 외침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타락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아멘’신앙의 좋은 점만 유지하고 잘못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성도들은 지성과 이성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성도들도 직접 성경을 공부하고 책을 보아야 한다. 성도들과 함께 신앙과 성경에 대해 진지한 공부와 토론이 병행되어야 한다. 교회의 정책에 대해서도 성도들의 경험과 지혜와 재능을 합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목사들에게 의존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목사들만의 권한처럼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비판의식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바라보아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든 성도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밤을 새며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양도 해야 하지만 합리적인 교회 운영을 위해서 밤새 함께 건전하고도 상식적인 토론도 해야 한다.
거짓된 하나냐의 예언에 대한 예레미야의 ‘아멘’의 외침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아멘 신앙을 잠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