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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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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고난 당함 본문
예수님은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눅 9:23). 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하신다(마 11:29-30).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신비다. 예수님은 우리의 짐과 십자가와 고뇌를 없애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짐과 고난과 고통을 그분의 짐과 고난과 고통에 연결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위대한 초대가 있으니 곧 상한 몸으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과 연대하여 살라는 부름이다. 초대에 응하여 감히 그분과 연대하여 살면 주님이 우리에게 그분 자신의 짐을 주시는데, 이 짐은 놀라울 정도로 가볍다. 그분의 우리를 위해 이미 짐을 지셨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만 우리에게 긍휼을 품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께 기꺼이 긍휼을 품어야 한다. 즉 라틴어의 의미대로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해야’한다. 우리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라는 초대는 아마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심오한 차원의 부름일 것이다. 긍휼이란 주님만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도록 초대받았다는 뜻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도 다 긍휼을 말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당하는 신비를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고난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보았고, 이 연대에 힘입어 그들의 고난은 부조리성을 상실했다. 여전히 고통스럽고 힘들고 외로웠지만 십자가와 연결되어 그들의 고난은 새로워졌다.
뭇에 찔려 상하신 그분을 바라보라. 그러면 당신에게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고 당신에게로 흘러드는 온기와 새로움이 느껴진다. 당신의 고난과 고통과 고뇌가 짐으로 느껴질 때마다 바로 그 고난으로 십자가에서 몸부림치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그러면 당신의 고난은 가벼운 짐이 된다. 하나님이 친히 그 짐을 지시고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고통과 문제를 일부러 찾아다닌다는 뜻이 아니다. 삶의 문제라면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때로 우리는 십자가를 지려면 자신에게 가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우선 자신의 고난을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예수의 길: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