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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기본 질서는 지켜야 한다. 본문

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 기본 질서는 지켜야 한다.

후앙리 2021. 3. 3. 11:42

언젠가 페북에 어떤 목사님(속칭 태극기 부대 소속)이 우리나라 대통령에 대해 심한 비방을 하였다. 거의 저주에 가까운 비방이었다. 이에 그 목사님의 친구가 말하기를 설사 대통령이 잘못한다 하더라도 국가의 대통령을 그토록 모욕하며 비방하는 것은 목사로서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는 도와 예가 있다. 도와 예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이다. 아무리 잘못한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인격을 모독하거나 그 사람을 증오하는 언사는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도와 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기본 질서는 지켜야 한다. 한 사람이 잘못하거나 그 조직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기둥을 빼는 것 같은 잘못(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예수님도 간음하다 사람들에게 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여인을 살려 주셨다. 그 여인의 죄는 법에 돌에 맞아 죽어도 당연하지만 주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주셨다. “죄가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시면서 그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용서가 있었다. 그리고 회복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잘못한 사람에 대해 용서는 없는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와 맞지 않거나 잘못한 사람들에게 자기는 죄인이 아닌 것처럼 돌을 던진다. “자비란 없다는 용어를 써가면서 공격한다. 자신의 원수나 대적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그러나 자비가 있어야 한다. 용서가 있어야 한다.

교도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죄 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벌만 주는 것이 아니다. 교도소가 존재해는 참된 목적은갱생이다. 벌을 받는 것과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 회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다시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교화하는 것이다. 벌만 주는 기능이 교도소가 하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용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뿌리채 흔드는, 즉 생명을 죽이는 그런 질서 파괴는 안 된다.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죄 없이 쫓겨 다니면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당했다. 그 순간에 분명히 잘못된 사울 왕을 죽이면 그만이다. 자신이 잘못도 없는데 자신을 죽이고자 한다면 당연히 다윗입장에서는 사울을 죽이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이었기에 죽이지 않았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기본적인 질서와 권위와 조직을 뿌리 채 흔들고 무너뜨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벌을 주는 것과 동시에 갱생과 회복이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기본 방식이다. 죽어 마땅할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의미는 우리도 죄인을 향해 증오보다는 정당한 벌을 받게 하고 다시 회복하고 일어서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와 다른 사람, 나의 원수에 대한 증오를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말고 기존의 질서를 지키되 잘못된 것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개혁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