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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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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비멜렉은 아닌가?

후앙리 2022. 10. 7. 04:58

사람은 모두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즉각 반응하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변명의 구실을 찾는다. 결국 사람의 기준은 나의 행동이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가? 아니면 사람과 조직에 해를 가져오는가? 에 대한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먼저는 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유혹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손해보지 않으려고 객관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왕이 되고자 갖은 술수를 부렸다. “너와 나는 형제가 아닌가?” 라는 관계를 사용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연, 학연을 사용하는 오늘날과 비슷하다. 내게 유리한 것은 어떻게든 짜 맞추려고 하고 사용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면서도 다른 명분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말한다. 아비멜렉은 형제 70명을 죽여가면서, 세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우리의 형제다라고 말하는 모순을 감행한 것이다.

우리도 자신도 모르게 이런 것을 사용한다. 진짜 형제는 죽이면서 형제가 아닌 사람들을 형제라는 명분으로 형제를 삼으려는 모순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아비멜렉의 사건을 읽으면 아비멜렉은 정말 악랄하고 악독한 사람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친형제 70명이나 죽였다. 그러고도 세겜 사람들에게는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형제를 내세우며 자신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아비멜렉이 내 안에 살아있지는 않는지, 냉철이 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기준을 내 이익과 유익을 위한 것으로 삼는 한 우리는 아비멜렉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우리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정말 이웃 모두에게 유익한 행동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의 기준이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도 아비멜렉이다. 아비멜렉이 되지 않도록 를 객관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의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