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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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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나

후앙리 2012. 1. 30. 22:38

최근 미국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공저로 펴낸 책 '탐욕의 복음을 버려라'를 통해 예수를 믿으면 건강 얻고 출세하고 부자 된다는 신학을 '번영신학'으로 규정하고 "맘몬(재물)에 대한 우상숭배에 다름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한 신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201110월 조선일보에 기사로 실렸다. 그 신학자는 탐욕으로 과도한 부()를 추구하려면 결국 남의 것을 빼앗게 된다고 주장했고 예수는 '누구도 하나님과 재물을 동일하게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대해 기독교가 자성해야 한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눈에 띈 댓글이 하나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이 신학자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을까? 얼마나 잘 살까?” 이 글을 읽으며 옛날 미국에서 안식년 중 공부하였던 때가 생각났다. 그 때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그 중에 아침에 신문 배달을 한 적이 있다.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할 때 이 신학자 교수님을 가끔씩 볼 수 있었다. 그 분의 집은 미국에서 꽤 좋은 동네에 있다. 아침에 조깅을 하는 교수님을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아침에 여유있게(?) 조깅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선교사로서, 선교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렵게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최상위의 혜택을 누리고 산 사람이다. 공부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 하여도 그것은 내게 주어진 몇 안 되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나와 교수님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또 다른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과도한 기회를 가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나는 불평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런 교수님이 한국의 목회자들의 물신주의 사상을 비판하셨다는 글을 읽으면서, 경제적인 수입 순위로 목회자들을 일렬로 세운다면 그 교수님은 어디쯤 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상위 10%안에는 넉넉히 들지 않을까? 교수님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려거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입장에서 말한다. 자기중심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기는 너무나 어렵다.

  대학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가정 형편이 아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별 부족함이 없이 학교에 다녔다. 이 친구 어머니는 하숙집을 경영하였다. 나는 집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대학을 다녔다. 3학년 때는 일 년에 아홉 번을 이사 다녔던 기억도 있다. 집 없이 이사 다니는 내게 이 친구는 어머니의 하숙집에 와서 살도록 제안을 하였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반값으로 배려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 하숙비가 그 때 내게는 엄청나게 큰 비용이었다. 절반으로 해준 하숙비도 학교 기숙사보다도 훨씬 더 비쌌다. 나는 학교 기숙사 비용도 없어서 떠돌아 다녔던 것이다. 기숙사 밥도 세끼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친구들이 먹는 밥을 옆에서 나누어 먹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의 배려는 참으로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그 어머니 하숙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후 그 친구는 꽤 큰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어느 날 만났을 때 그 친구가 다른 목사 친구를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 좋은 자동차를 타고 나닌다고. 그 친구 집에 언젠가 내가 방문했을 때는 목사가 이럴게 큰 집에 살고 이렇게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되는지에 대해 나는 의문을 품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자기보다 더 큰 차를 타는 다른 친구 목사를 비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잘 사는 모습에 실망할까를 생각해 본다. 선교사라면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양복을 입고 다니는 나의 모습만 보고도 실족하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를 해 본다. 내 입장에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 더욱 겸손해져야 할 것이다. 나보다 형편이 더 좋은 분들을 볼 때는 비판하거나,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분들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비판은 쉽지만 그 비판의 대상이 바로 나이여야 할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7:1-3).

(201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