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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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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몸이 아픈 가운데서 본문
이번 주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많이 아팠다. 오늘도 계속해서 몸이 아파 힘들다. 이 아픔이 시작된 지는 벌써 한 달 전부터이다. 증상은 기침과 가래가 계속되고 몸이 피곤하고 쑤시는 것이다. 아픔이 한 달 동안 계속되다가 이번 주에 절정에 달했다. 언제 나을지도 모르고 어디가 문제인지도 모르니 마음도 답답하다. 지난 한 달 동안 무리하지 않았고 많이 쉬었지만 몸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아 더 힘들다. 이 아픈 중에 내게 일어난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짜증이 늘었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다정한 말 대신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게 됐다. 큰 소리 치는 것과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얼굴은 짜증으로 찡그려져 있고 모습은 힘들어 지쳐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몸이 피곤하고 아프니 어떤 일도 하기가 싫어졌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졌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도 하기가 싫다. 지난주까지는 몸부림치면서 일어서려고 했는데 이번 주에는 그것마저 포기해야만 했다. 약만 자꾸 복용하게 된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기보다는 한국에서 사온 종합 감기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어도 별 진전이 없지만 그것마저 먹지 않으면 더 견딜 수 없다. 몸이 귀찮고 힘드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하기 어렵다. 말씀 묵상도 안 되고 잠만 온다. 누우면 자고 하루 종일 쉬는 날이 많아졌다. 이제는 어떤 일을 하기는커녕 머리로 생각하는 것조차도 귀찮아졌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자꾸 움츠려 든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게 되고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미워진다. 누군가 원망하고 싶어진다. 나의 고통은 혼자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외롭다는 생각도 든다. 평소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몸이 아프니 자꾸 어두운 생각만 하게 된다
왜 이렇게 약해지고 있는가? 왜 몸이 호전이 안 되는가? 무엇이 원인일까? 내 생각에는 그동안 일하는 것에 무리를 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사역한다는 것으로 몸을 돌보지 않았고 쉬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무리한 사역이 원래 고산 지형에 약한 내 체질을 견디기 힘들게 만든 것 같다.
아픈 중에 부정적인 생각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으로 나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동안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것처럼 자신하며 살아온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고 권면하면서 나 자신은 돌보지 않으며 살아온 것이다.
이번에 내가 참 연약한 존재인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이제부터는 좀 더 겸손해 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말을 적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말을 할 때 일방적으로 나를 주장하는 것을 줄일 필요도 있다. 설교하고 가르치면서 내가 잘하는 것처럼 드러내지도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장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하나님보다도 나를 더욱 자랑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말을 적게 할 뿐 아니라 나를 낮추고 겸손히 살아야 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통 중에 몸부림쳐도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픔을 이기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스스로 이길 수 없었다. 이제는 내가 나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님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나를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에도 나와 함께 하셨다. 앞으로도 함께 하실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에 가장 몸부림칠 때에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계시면서 무응답으로 반응하셨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고통 가운데 계셨다. 다만 예수님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셨을 뿐이다. 예수님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셨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처럼 나와도 함께 계신다.
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는 존재이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살았던 것은 내가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나의 삶에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침묵하신다. 그러나 침묵하신다고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의 긍휼과 선한 뜻으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내 몸이 좋아지고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몸부림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일 것이다.
몸이 아픈 중에 폴 트루니에의“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읽었다. 그 책을 통해서 인생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며, 아름다운 것인가를 배웠다. 책에서는 모험하는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실패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요, 성공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아픔으로 실패가 있다면 이것은 나의 인생을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과 실패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고통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는 성장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인생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더 많이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100%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먼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계획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나 스스로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살아온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 스스로 너무 완벽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일을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쉴 때가 있을 때 불안해 했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고 그분이 하시는 대로만 따라가야 한다. 그분이 쉬라고 하면 쉬고, 그분이 전진하라고 하면 전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스스로 인도해 왔기에 너무 조급해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내가 만든 틀을 정해 놓고 가족들과 사람들이 그 속으로 오도록 다그치면서 살아 온 것 같다. 나 스스로가 좁은 틀을 만들어 나와 내 가족과 사역까지 조여 매었던 것 같다. 때로 나는 너무 계획적이다. 계산적이다. 완벽주의자이다. 내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안 되면 몸부림치는 나 자신이었다. 결국 이것은 내 염려였고, 내 주도권으로 살아온 증거이다. 이제는 내가 염려하는 것으로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이제는 좀 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자유 안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 실수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여유를 가져야 한다. 평강은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평강의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주님을 묵상하자. 오늘 밤은 주님만을 바라보며 그분 품 안에서 평안히 잠자고 싶다. (200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