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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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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영성/영성 자료

+ 무력함

후앙리 2021. 6. 3. 15:00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들과 그들의 땅을 파괴하는 악마적인 권력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과거에는 어떠하였고 또 현재는 어떠한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심오하고도 완전한 신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스스로 무력함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철저히 연약한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기로 선택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권력의 환상을 폭로하기 위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왕자를 물리치기 위해 그리고 분열된 인류에게 새로운 하나 됨을 가져다주시기 위해, 무력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적인 자비는 완전하고 순전한 무력함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었다.

하나님의 혁신적인 선택은, 권력을 완전히 제거하신 상태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영광, 아름다움, 진리, 평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한 선택이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아주 어렵다. 우리는 전능하시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계속하지만,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신 그분은 모든 힘과 권세가 없는 상태이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연약함으로 점철된 인생을 사셨던 그 나사렛 사람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의 연약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친밀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우리를 지배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킬 수 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우러러본다. 그들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것을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도 갈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력은 그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부러워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바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오기를 원하신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작은 아이가 되셨다. 누가 작은 아기를 무서워하겠는가? 작디작은 아기는 부모나 유모, 자기를 돌보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주 무력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먹거나 마시거나 걷거나 말하거나 놀거나 일할 수 없도록 되기를 원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라서 우리 가운데 사시고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인간에게 의존하는 자가 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정말 무력한 자가 되기를 선택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 자신의 사명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시게 되었다. 우리 품 안에서 어르고 있는 아기를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보살핌에 대한 반응으로 생극 웃는 아기를 어찌 부러워하겠는가?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연약함으로 권력의 장벽을 극복하시기 위해,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인간이 되셨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이야기이다. (영성에의 길: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