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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부활의 종교 본문

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부활의 종교

후앙리 2020. 5. 19. 23:58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다.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이 부활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는 반드시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무덤에서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도 죽음을 앞에서 평안할 수는 없다. 혹시나 코로나에 걸려 죽지는 않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지난번 이태원 클럽에 간 사람들이 코로나에 확진 되어 잠시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긴장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왜 그런데 가느냐? 왜 민폐를 끼치느냐? 젊다고 자신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간다. 등등의 엄청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나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무서운 코로나도 무시하고 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놀아야 하는 그런 젊은이들의 영혼은 어떤 상태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곳에 간다고 해서 구원을 못 받는다는 말은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까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코로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젊은이들이 갈 길을 잃고 그들의 영혼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체는 모두가 죽는다. 코로나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수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이 방황하고 있는 것, 그들이 복음을 모르는채 영혼이 죽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태원 클럽에 가는 사람들을 보니 제주도에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갔다. 그들은 죽음을 무릎쓰고 가서 클럽에서 놀았다. 그대로 그렇게 쭉 산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세상을 인해 무서워해야 한다. 코로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는채 죽어가는 것이다. 복음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복음에서 멀어진 삶을 사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타락한 삶, 사탄이 좋아하는 삶을 사는 세상이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이 코로나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이 코로나로 국격이 올라가고 한국인인 것에 대한 자부심이 더 좋아졌다고 하지만 정녕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복음의 힘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이 사태를 보면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타락한 세상, 갈길을 잃은 젊은이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만 부활한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부활의 길에서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향한 복음의 빛을 발해야 하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사회가 타락의 길로 더욱 빠져가는 것은 복음을 가진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한국을 위해, 복음을 모른채, 죽음까지도 무릎쓰고 춤을 주고 놀아야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이 사회가 주님의 복음으로 가득차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어두운 부분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신천지가 그랬다. 우리가 그 동안 몰랐던 이태원의 클럽들이 그랬다. 이제는 죄가 드러나는 세상, 어두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발할때다. 그런 책임의식과 사명의식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먼저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대한민국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각자가 있는 곳에서 선한 영향력,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며, 복음을 전하며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더 많이 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