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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전도와 복음 본문

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전도와 복음

후앙리 2020. 5. 20. 21:04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전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산다.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고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전도해서 구원받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절대적인 책임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소중한 구원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것을 알려주고 나눠주어야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전도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서 저 사람에게 전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채운다.

그러나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적게 갖고 사는 것 같다. 나도 솔직히이전보다 전도해야 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육신의 형제들을 구원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었는데, 지금은 그 간절함이 예전보다 약해지는 것 같다. 길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달려가 전도하고픈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이 식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전도에 대한 부담이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도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고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여전히 기도하며, 형제들을 만났을 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단지 전도에 대한 강열한 열정이 이전보다는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전도에 대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전도의 부작용을 보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나 버스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거나 확성기로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전도의 방법들이 전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저런 전도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전도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말로하는 전도는 요즘 시대에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행동으로 보여주고 복음으로 사는 모범적인 삶을 통해 전도하는 것이 효과가 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말로 하는 전도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면에서 삶의 전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전도에 대한 부담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을 대할 때 온전히 그 사람을 전도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이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어버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본받을 만한 행동이나 삶의 모습이 있으며, 배우고 서로 나눌 수 있는 공통점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인간관계를 맺을 때 온전히전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사람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하기 어렵게 된다. 오히려 전도의 대상보다는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해서 전도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함께 편하게 교제할 때 인간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 맺게 되면 전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면 오히려 복음을 편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도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만나는 사람과 잘 사귀고,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앞서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말로 하는 전도에 대한 많은 부담을 내려놓게 되고 오히려 사람들을 자연 그대로 대하면서 인간적인 관계 맺는 것을 우선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게 되면 복음을 나눌 기회가 많아지기에 이전에 가졌던 전도의 대상으로만 사람을 보는 것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전도이다. 그러나 복음은 믿어 영생을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미가 있다.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사는 삶도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복음의 삶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믿는 자답게 사는 것이고, 예수 믿는 자로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한 인간의 삶의 과정을 비교해서 복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다. 태어난 어린 아이는 태어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아야 한다. 몸도 자라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 인간은 죽을 때 까지 성장해야 하며 그 모든 과정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간 됨이 끝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예수 믿어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어린 아이로 태어난 것과 같다. 구원은 예수 믿어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따라오는 것이다. 예수 믿었으면 그 뒤로 예수 믿는 자 답게 살아야 한다. 예수 믿은 자로서, 생명을 얻은 자로서의 자라야 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 믿어 생명을 가진 자로서 죽을 때까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인생 또한 소중하다. 복음은 이러한 전 인생의 삶을 포함하는 것이다. 단지 예수 믿어 구원받는 것은 이제 어린 아이로 태어난 것이고 말씀과 함께 중요한 삶을 사는 인생이 남아 있다. 복음은 예수 믿어 구원받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까지 포함한다.

나는 사역자로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잘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사역을 주로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하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책임인 것처럼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전인적으로 건강하게 살도록 도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도 복음 사역이다. 어린아이를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육하는 것도 중요한 것처럼 전도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역할을 주로 하다보니 말로 하는 전도에 대한 열정이 약간 식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복음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나의 사명과 은사는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난(거듭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양육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복음을 전하려 오셨다. 그 구원과 복음의 의미는 사람을 전도해서 새생명을 얻게 하는 것과 그 생명이 잘 양육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요한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보냄을 받아서 하신 일, 즉 사명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들을 구원케 하신 것이었다. 그것이 초점이었고 중요하였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보냄을 받아서 그것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제자를 훈련하고, 가난한 자, 약한 자, 힘든 자, 배고픈 자, 외로운 자, 억울한 자, 병든 자를 도와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고쳐주셨다.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기에 사람들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전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중심으로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을 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복음이다. 복음의 좁은 의미는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이고, 넓은 의미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예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삶이 중요하기에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총체적인 사역을 하는 것 또한 넒은 의미에서 전도다. 말로 하는 전도에 대한 열심과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전도된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사역 또한 넓은 의미에서 전도라고 생각하고 전도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람들을 양육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도와주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의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복음 사역(전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