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선교교육 연구원(IMER)

+ 삶의 기쁨 본문

선교와 영성/영성 자료

+ 삶의 기쁨

후앙리 2021. 6. 2. 19:16

나는 페루 리마 안에 있는 극빈 지역에서 한 동안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모든 방문객에게 또렷이 각인되는 한가지 인상이 있다.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리마의 빈미들은 온갖 역경에 싸여 있는데도 한가하게 신세타령이나 하지 않는다.

내가 리마에 간 이유는 거기가 프로젝트 현장으로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그 모든 가난 속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해볼 작정이었다. 나는 도시를 벗어난 팜플로나 알타라는 거주 구역의 어느 가정 집에 머물렀다. 매우 건조한 사막 지역인데도 주변 산비탈에 수천 개의 판잣집에 세워져 있었다.

파블리토, 마리아, 소피아, 파블로, 어린 조니와 함께 살고 있는 그 집에서 교회까지 가려면 날마다 적어도 20분씩 걸어야 하는데 매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집을 나서면 집집마다 어린 아이들이 나를 보러 달려 나와 신부님, 신부님하면서 붙잡았다. 이렇게 말쑥한 장신의 미국인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는 일이기에 아이들은 우르르 손을 내밀어 어느새 내 모든 손가락을 하나씩 잡고는 놓아 주지 않았다.

날 놓아주렴, 얼른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거든!”

그래도 아이들은 한사코 나를 놓지 않고 아래로 잡아 당겼다. 그러다 내가 모래 바닥에 앉으면 일제히 쳐다보며 내게 손을 대 보고 내 다리를 만졌다. 어떤 아이는 내 입을 보며 입이 정말 크시네요!” 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거창한 5개년 계획을 품고 간 내가 그 자리에 그러고 있었다.

가야 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니까.” 그래도 아이들은 나를 꼭 잡고는 우리랑 놀아주세요, 날씨도 좋잖아요라고 말했다. 가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여기, 바로 내 앞에 있다고 이 어린 아이들이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우리 공놀이해요, 그냥 웃어요! 신나게 웃어요!”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기어오르며 재미있게 놀았다. 순수하게 즐길 줄 아는 모습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우리에게 역방향의 선교가 필요함을 나는 그곳의 아이들을 통해 깨달았다. 선교는 가난과 고생 속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로부터 이곳 북미의 우리에게로 흘러가야 했다. 그들은 고난과 고뇌 속에도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웃음과 놀이는 바로 하나님의 치유다.

압제와 기아와 빈곤을 경감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가난 속에 피어나는 아이들에게 기쁨에 동참할 수 없다면 우리가 정말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마치 우리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듯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하나님만이 세상을 구원하신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기뻐할 수 있는 이유다.

만일 내 다리가 아프다면 나는 그 아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수많은 어휘를 써서 통증을 묘사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지 않다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몸이 성할 때는 건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내 언어는 제한되어 있다. 내 언어는 기쁨보다 불안을 표현하는 데 훨씬 더 정교하다. 한편으로 이는 우리 삶에 기쁨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좋은 신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기쁨을 생각보다 더 자주 경험하고 기쁨 삶이 우리의 평상시 모습인지도 모른다. 기쁨이 워낙 평범한 일이라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