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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오늘의 말씀 2015년 3월 6일(금)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 오늘의 말씀 2015년 3월 6일(금)

후앙리 2015. 3. 15. 23:39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22:30)

 

+ 본문 이해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동족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주기 위해 제단을 쌓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들, 즉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 지도자들이 좋게 여겼습니다. 오해가 풀린 것입니다. 이제 싸우고자 하였던 계획을 철회하고 기쁘게 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 보고합니다. 한편, 동편 두 지파 반은 그 쌓았던 제단 이름을 엣이라 했고 이는 이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는 뜻이었습니다.

 

+ 묵상

대화를 통해서 오해를 풀었습니다. 대화가 모두 오해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들이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대화를 많이 해도 성숙도가 떨어지거나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없다면 서로 비방과 오해로 끝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들을 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얘기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잘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화의 기술이란 경청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기술이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듣고 새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귀 기울여서 잘 듣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성숙한 사람입니다.

 

2. 두 지파 반의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좋게 여겼습니다. 잔뜩 오해하고, 그리고 싸울 작정으로 간 사람들이 상대의 말을 듣고 좋게 여겼습니다.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한 것입니다. 받아들인 것입니다. 적군으로 생각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기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참된 경청은 단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들었다면 그것에 대한 반응은 바로 좋게 여기고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좋은 경청이 아닙니다. 설사 상대가 이야기를 잘 못 했더라도 내가 기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바로 경청하지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한편으로 상대가 좋아할 말을 해야 합니다. 좋게 여길 수 있도록 순수함과 정직함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상대가 듣기에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 적용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의 본성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을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요? 우리의 위치, 즉 부모로써, 목사로써, 상사로써의 위치에서 듣고자 하기보다는 가르치고자 하지는 않는지요?

요즈음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은지요? 좋지 않다면 혹시 나의 듣는 자세 때문은 아닌지요? 바른 경청을 하는 삶을 사는지요? 나쁜 경청과 대화의 습관이 있다면 과감히 바꾸시지 않으시렵니까?

나는 상대가 좋아하는 말을 하는지요? 상대가 기뻐하는 말을 하는지요? 아니면 상대가 기분이 나빠지도록 일부러 좋지 않은 말을 하는지요? 이스라엘이 서로 이해하고 좋게 여기고 화해한 것처럼 대화를 통해서 모든 풀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들리는 소문만을 듣고 그분에 대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만나서 오랜만에 대화를 하였습니다.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불편했던 마음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오해했던 것은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서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오해하며 불편했던 마음을 회개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문제였다는 것, 대화를 하지 않았고 그분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려 했던 것임을 고백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