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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4월 3일(금)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0년 4월 3일(금)

후앙리 2020. 4. 2. 22:46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장)

+ 말씀설명
오라비가 죽고 나서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좀 더 일찍 오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슬픔가운데 울었다. 이에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어디에 장사지냈는지 물으시면서 동시에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다. 사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실 계획이 있으셨다. 바로 가서 살리시고자 하셨다. 그런데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라. 지금 내가 살려 줄게”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비통하게 울고 있는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며 함께 우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으로만 인간을 대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처지를 아시고 공감해주시고 인간 편에서 감싸주시고 함께 슬퍼하시며 아픔을 나누시는 분이시다.

+ 묵상과 적용
나만의 아픔과 슬픔이 있다면 예수님은 그 원인이나 결과 이전에 먼저 이해하시고 함께 공감해주신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위로를 주는가?
주님께 가지고 가야할 현재 나의 어려운 문제는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주님께서 고통과 슬픔과 답답함 가운데 있는 저와 함께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 우리 교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함께 해주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3. 한국 사회의 문제를 아시고 지금도 함께 하셔서 다시 한 번 코로나로 인한 고통을 해결해주소서.
4. 코로나로 인해 중국 국경이 막힘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옵소서.

+ 성경본문(요 11장)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공감
교인 중에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나 주위에서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부활하니 그 소망으로 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슬플 때 울면 믿음이 없는 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로는 예수님의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바로 살리실 계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에게 “울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마음에 비통히 여기시고 함께 울어주셨다. 내가 그 때 당시에 예수님의 입장에 있었다면 “바로 가서 고쳐 줄테니 울지 말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기 전에 같이 울어주시고 그들의 슬픔을 같이 공감해주셨다. 그들의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비통함을 느끼셨다. 이런 태도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람들의 반응이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쯤이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 밖에도 쉽게 나가고 평소의 일상처럼 산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까봐 혹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극도로 조심한다. 가능하면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나가도 잠간만 나간다. 마스크는 필수다. 이런 대처의 마음이 다르니 서로가 불평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들에게 유별나게 걱정한다고 불평한다. 반대로 이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삶을 그대로 사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에 분노가 끌어 오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다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내 주장과 내 생각을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반대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까를 생각하고 서로 이해해주어야 한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이 괜찮지 않으면, 괜찮다고 그냥 넘어갈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그들을 불평하지 않아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뿐 아니라 내 주장이 진리인 것인 냥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문제가 바로 해결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믿음 없다고 책망하시거나 그들의 눈물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같이 울어주셨다. 우리도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 예수님처럼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불평 대신 이해와 감사와 격려가 더 많아지는 지금의 어려운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 선거가 보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치에 대해서도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나와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죄인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내가 더 옳다면 더 더욱 잘못된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 사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편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먼저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평안해지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편하게 살려면 나와 다른 사람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불평하기 전에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주입하려하지 말고 함께 울어주자.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성숙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