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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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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10월 22일(금) 본문
6 바벨론의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렘 39장)
+ 말씀설명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시드기야 왕은 결국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을 함락당하게 된다. 바벨론은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들과 유다 귀족들을 죽였다. 시드기야의 눈도 빼게 하였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이 이방에게 비참하게 멸망 당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정체감의 혼돈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결과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죄 앞에서는 선민이나, 형통이나, 잘남이나 능력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의 잘못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묵상과 적용
- 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이 회개치 않는 것 때문은 아닌가?
-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 회개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심판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든든히 서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2. 중국은 탈북민들을 난민이 아닌 경제적 이유로 중국에 입국한 불법 이민자라고 주장하며 강제 북송을 지속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가 정치와 종교의 이유로 탈북한 난민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여 더는 북송하지 않고, 합당한 절차에 따라 대우할 수 있게 하소서.
+ 성경본문(렘 39장)
1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3 바벨론의 왕의 모든 고관이 나타나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네부와 내시장 살스김이니 네르갈사레셀은 궁중 장관이며 바벨론의 왕의 나머지 고관들도 있더라
4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 길을 따라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의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고난의 선택
고난과 평안의 두 길이 있다면 대부분은 평안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이익과 손해의 순간에 손해를 선택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고난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특별한 의미나 어떤 뜻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손해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때로 고난을 선택하라고 한다. 신앙생활 자체가 고난의 연속임을 말씀한다. 다른 사람이 많이 가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가라고 한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였다. 육신의 쾌락을 내려놓고 절제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이웃이 어떤 것을 요구하였을 때 후하게 들어주라고 한다. 고난이 왔을 때 참으라고 한다. 정직과 공의로 사는 것이 때로는 손해를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왜 그렇게 요구하는가? 그것은 믿음 있는 자의 가치는 죄가 있는 사람들의 가치와 다르기 때문이다. 고통과 손해 없이 주님이 가신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난의 결과는 영원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를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하는 믿음과 소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도 어떤 선택을 하는가? 더 편안한 길, 더 나은 길, 더 쉬운 길, 더 좋은 길만을 선택하지는 않는가? 여전히 세상에서 좋은 것을 선택하지는 않는가? 세상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참 된 믿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