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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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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2년 12월 28일(수) 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유 1장)
+ 말씀설명
유다서는 교회 내부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기 위해 쓴 서신이다. 이 서신을 쓰면서 먼저 성도들의 정체감에 대해 확인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의 인사말을 한다. 그들의 정체감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성도들이다.
이어서 성도들에게 축복의 인사를 한다.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많을 것을 축복한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어떤 것을 주는가? 성도 간에 무엇을 주고받음이 중요한가?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기억하자.
+ 묵상과 적용
나는 성도들을 대할 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전파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성도들과 긍휼을 전해주는 자가 되게 하소서.
2. 튀르키예는 2014년에도 서부에 위치한 소마(Soma) 탄광 폭발로 301명이 사망한 적이 있었다. 생존자의 치료와 더불어 사망자 가족들에 대한 위로와 책임있는 사과가 이루어지고, 사고원인과 대책이 잘 강구되어 앞으로 이러한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 성경본문(유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내가 해야 할 일
우리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학폭은 옛날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으며,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다. 그 폭력은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 즉 왕따를 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한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거나 비방하거나 욕을 하거나 괴롭히는 일이 왕따다. 이런 학교폭력은 학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나타난다. 간호사 태움이라는 것이 있다.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면서 괴롭히는 것이 간호사 태움이다. 간호사 태움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조직마다 서열이 있고 그 서열에 따라 군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군기가 쎈 직업은 의사라고 하는 보고서도 있다.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의사가 군기가 제일 쎄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처럼 이 사회 어느 곳에든 사람과의 관계가 쉬운 곳은 없다. 개인 간에도 불편한 관계를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산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주위에 한둘은 언제나 있다고 본다.
누군가 자신을 괴롭힐 때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 사람이 억울하게도 하고, 하지 않은 나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하고, 뒤에서 비방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힐 때 우리는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즉 내가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유다서에서는 성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이 바로 성도들이다. 이런 자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괴롭힐 때 먼저 나의 정체감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의 행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내 행실이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이 말한 것과 상관없다면, 즉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나를 비방하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를 비방하고 괴롭히는 자들의 행동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가 분명히 객관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면 나를 비방한들 그것에 내가 괴로워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방해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가 방해하고 거북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일을 위해 계속해서 해야 하고 그가 불편해 하더라도 내가 할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 피하고 싶고 같이 일하기 싫다. 그렇지만 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내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의 유혹에 내가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정체감을 생각하고 내가 하는 일이 잘못된 것이 없다면 어떤 방해를 받더라도 꾸준히 성실하게 행해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행동이 바르다면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괴롭힌 사람 때문에 나를 오해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풀어주실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그래서 우리를 방해하고 괴롭히는 자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해야 할 바른 일,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포기하지 말고 묵묵히 계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