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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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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1월 11일(토) 본문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장)
+ 말씀 설명
본문에서 바울이 하는 세 가지 기도 제목을 볼 수 있다.
첫째,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들의 속마음이 강건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셋째,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성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여기서 충만은 은혜의 충만을 가리킨다.
오늘은 이 기도를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어 내 이름과 이웃의 이름으로 바꾸어 기도해보자.
“성경의 능력으로 저의 속마음이 강건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제 마음에 가득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의 충만이 제게도 충만하게 하소서. 아멘”
+ 묵상과 적용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아닌 내 능력과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가?
+ 선교적 실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더욱더 섬겨야 하는 영역은 무엇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소서.
2. 입양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질 수 있도록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노력이 계속되도록
+ 성경 본문(엡 3장)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 억울함을 푸는 방법
한 선교사님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전화를 하셨다. 선교사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선교사님의 억울함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억울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선교사님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그래서 선교사님의 억울함이 더 안타까웠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그런 상황을 만든 근본 원인은 선교사님이 제공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사건 자체는 억울한 부분이 확실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선교사님의 이전의 행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판단이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이 선교사님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는 태도를 보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그런 부분을 알지만 인간관계가 다 좋아서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좋은 관계를 잘 맺고 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좀 알고 고치기를 바라지만,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 선교사님의 억울함이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이고, 그런 원인을 만든 것은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 되어지기에 이런 말을 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약점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 약점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기에 자신이 갖는 상처만 크게 남는다. 사람은 분명 억울함이 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물론 그 억울함이 자신의 잘못이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 상대의 잘못으로 인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을 당할 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자신의 약함이 아닌 상대의 잘못이 분명한 억울함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도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살필 때 그것이 자신의 연약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반성하고 고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방법은 분명하다.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중의 하나다. 하나는 상대가 잘못한 억울함이면, 내가 잘못하지 않았기에 빨리 떨쳐버리고 잊어버려야 한다. 또 하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치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전화위복이 된다.
억울함에 너무 힘들어 한다면, 이 두 가지를 살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성찰하며,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