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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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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1월 30일(목) 본문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몬 1장)
+ 말씀 설명
바울은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를 감옥에서 만나 전도하였다. 오메시모는 복음으로 변화되어 바울의 충실한 동역자가 되었다. 이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서 오네시모가 그리스도를 위해 변화된 사역자로 바울을 위해 꼭 필요한 동역자가 되었으니 그를 용서하고 받아주라고 요청한다. 바울의 요청의 태도는 억지나 강요가 아니라 공손하게 부탁은 하면서 빌레몬의 뜻에 따르겠다고 한다.
갈등의 상황에서 중재하는 바울의 태도는 겸손함과 상대를 존중함이 가득해 있다. 오늘날 우리도 바울처럼 상대를 존중하는 화해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혹시 내가 화해자로 서야 하는 공동체에서의 형제들은 없는가?
+ 선교적 실천
주위에 화해가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가?
+ 오늘의 기도
1. 사랑으로 회복을 간구하며, 상처 입은 형제들을 안아 주는 화평의 중재자가 되게 하소서.
2. 잠비아 정부가 도시와 농촌 간 에너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주변 국가들과 함께 가뭄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도록
+ 성경 본문(몬 1장)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 무익하였으나 유익한 심복이다
일상의 삶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검은 머리를 가진 짐승(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이다. 즉,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혹시 잠시 바뀌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또 나쁜 짓을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실망하였을 때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이 말이 꼭 참된 말은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변화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구원을 받으면 존재가 변한다고 말씀한다. 존재뿐 아니라 행동과 삶도 변한다고 한다. 우리는 믿음이 있는 자들 가운데서 이런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작년에 내가 선교 강의를 하는 곳에 한 장로님이 참석하셨다. 장로님은 자신은 나이가 많이 먹었지만, 선교지에 가서 3년 정도 봉사하고 오겠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장로님은 전에 조폭이었다. 지금은 변화되어 장로가 되었고 선교사가 되기를 소망하여 선교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도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오네시모이다.
“전에는 무익한 존재였으나 지금은 유익하며 나의 심복이다.”는 말은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고백이다. 오네시모는 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지만, 믿음을 가진 후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을 볼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을 보아야 한다. 나는 예수 믿고 나서 변화되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똑같은 사람인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변화를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옛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감하게 잘못된 것을 고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무익한 사람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유익한 사람인가?